빚 수렁에 빠진 韓경제…4대 금융지주 부실채권 역대 최대.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가 2024년 3분기까지 이자와 수수료 이익으로 15조원이 넘는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실 대출이 급증하며 자산 건전성이 역대 최악 수준으로 악화되었다고 9일 파악됐다.

수년간 이어진 저성장과 고금리 환경 속에서 자영업자 및 중소기업 등 취약차주(대출자)들이 원리금을 제때 상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최근 경기 회복이 일부 대기업과 수출 기업 위주로 진행되면서, 금융권에서는 당분간 건전성 지표 악화가 지속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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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실 규모 역대 최대치 경신…건전성 지표 빨간불

4대 금융지주가 1분기 실적과 함께 공개한 팩트북 등에 따르면, 3분기 말(9월 말) 기준으로 이들 지주의 요주의여신(연체 1~3개월) 합계는 18조3천49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수치는 우리금융지주 출범 이후 4대 금융지주 합산 통계가 시작된 2019년 1분기 이래 가장 높은 규모이다.

요주의 단계보다 부실이 더 심각한 고정이하여신(NPL, Non-Performing Loan·연체 3개월 이상) 또한 9조2천682억원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작년 3분기 말의 7조8천651억원 대비 약 18퍼센트(%) 증가한 역대급 규모이다.

이러한 부실 확대 현상으로 인해 전체 여신(대출) 중 고정이하여신(NPL) 비율(단순평균 0.72퍼센트(%))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던 올해 1분기 말 및 2분기 말의 0.74퍼센트(%)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반면, 부실 감당 능력을 보여주는 4대 금융지주의 단순평균 고정이하여신 커버리지 비율(대손충당금 잔액/고정이하여신)은 123.1퍼센트(%)로 역대 최저 수준까지 하락했다.

이는 작년 3분기 말 141.6퍼센트(%)와 비교하여 1년 새 18.5퍼센트포인트(%) 급락한 수치이다.

◆ 막대한 충당금 적립에도 '역부족'

주요 금융지주들이 자산 건전성 악화를 방어하기 위해 막대한 충당금을 쌓고 부실 채권을 적극적으로 상각 및 매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실 규모가 커졌다는 점에서 상황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2024년 3분기까지 4대 금융지주가 적립한 총 충당금은 5조6천296억원으로, 2019년 이후 3분기 누적 기준으로 가장 많은 금액이다.

아울러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 올해 1~3분기에 걸쳐 총 4조6천461억원 규모의 부실 채권을 상각 및 매각했다. 이는 해당 은행들의 상각 및 매각 합산 통계가 시작된 2018년 이래 3분기 누적 기준 최대 기록이다.

은행은 연체 3개월 이상인 대출 채권을 '고정 이하' 등급의 부실 채권으로 분류하여 특별 관리하며, 회수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될 경우 장부에서 해당 자산을 지우거나(상각) 자산유동화 전문회사 등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처리한다.

◆ 저성장·고금리 장기화, 경기 양극화가 부실 확대 주된 원인

금융권 관계자들은 현재의 부실 확산 원인으로 수년간 이어진 한국 경제의 저조한 성장세와 높은 금리 수준을 꼽고 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지만 양극화로 인해 모든 경제 주체들이 체감하기 어려운 데다 환율 등 경제 불확실성도 커져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등 취약계층은 여전히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부동산과 가계부채 관리 등을 위한 기준금리 인하 지연으로 시장금리 인하 속도 또한 예상보다 느려 채무자들의 이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금융지주 관계자는 "미국의 관세 정책에 따른 무역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경기 회복 지연에 따라 한계 중소기업 및 취약 업종 등 고위험 섹터 위주로 부실 대출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 경기 회복 불확실성 속 건전성 관리 강화 전망

향후 경제 전망에 대해서는 엇갈린 관측이 나온다.

일부에서는 증시 활황과 정부의 소비 쿠폰 등 경기부양책이 효과를 발휘하면 금융권 여신 건전성도 회복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예측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경제 성장률이 당분간 잠재 수준(약 2퍼센트(%))을 하회할 가능성이 커서, 취약차주 감소나 금융권 자산 건전성 개선이 뚜렷하게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권은 자산 건전성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고금리 고객을 대상으로 한 금리 감면 프로그램과 취약차주 채무조정 등의 포용적 금융을 실천하여 선제적으로 건전성 악화를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금융지주 관계자는 "부실 우려 자산과 관련해 추가 대손충당금을 적립하고, 적극적인 상각 및 매각을 통해 고정이하여신(NPL) 감축을 시도할 것"이라고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