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강의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사진=연합뉴스

연세대학교의 한 강의 중간고사에서 챗지피티(ChatGPT) 등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집단적인 부정행위 정황이 드러나 학내 파장이 크게 확산되고 있다고 9일 확인됐다.

특히, 적지 않은 수의 학생이 인공지능(AI)을 악용하여 시험을 치른 것으로 전해지면서 대학가의 인공지능(AI) 활용 시험 문제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한 결과, 연세대 신촌캠퍼스의 3학년 대상 수업인 '자연어 처리(NLP, Natural Language Processing)와 챗지피티(ChatGPT)' 담당 교수는 최근 "학생들의 부정행위가 다수 발견되었다"고 밝히며, 적발된 학생들의 중간고사 점수를 모두 '0점' 처리하겠다고 공지했다.

자연어 처리(NLP)와 거대언어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 등 생성형 인공지능(AI)을 다루는 이 수업은 약 600명의 학생들이 수강하고 있으며, 인원이 많아 비대면으로 진행된다.

중간고사는 지난 10월 15일 비대면으로 치러졌으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진 것으로 알려졌다.

시험 부정행위를 막기 위한 조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험은 온라인 사이트에 접속하여 객관식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응시자에게 시험 시간 내내 컴퓨터 화면과 손, 얼굴이 나오는 영상을 촬영하여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은 촬영 각도를 교묘하게 조절하여 사각지대를 만들거나, 컴퓨터 화면에 여러 프로그램을 겹쳐 띄우는 편법을 사용하여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정황을 포착한 교수는 학생들에게 '자수'를 권유했다고 한다.

실제 부정행위를 저지른 학생 수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나, 수강생들 사이에서는 절반 이상일 수 있다는 추측이 나왔다.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한 수강생이 올린 '양심껏 투표해보자'는 제목의 투표 글에서는, 스스로 비수강생이라 밝힌 응답자를 제외한 353명 중 190명이 '커닝했다'고 답했으며, 163명은 '직접 풀었다'고 응답했다.

상당수의 학생은 부정행위 과정에서 인공지능(AI)을 몰래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수업 수강생 에이(A, 25)씨는 연합뉴스에 "대부분 챗지피티(ChatGPT)를 사용해 시험을 치른다"며 "나만 안 쓰면 학점을 따기 어려울 거라는 계산"이라고 말했다.

지난 학기 이 수업을 들었던 비(B)씨 역시 "저를 비롯해 많은 친구가 인공지능(AI)으로 검색해 가며 시험을 봤다"고 인정했다.

일상 곳곳 침투한 생성형 AI.사진=연합뉴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대중화된 지 3년이 지났으나, 대학가의 혼란은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

인공지능(AI) 성능이 빠르게 고도화되면서 학습 보조 도구 수준을 넘어선 상황이지만, 학교의 인공지능(AI) 사용 정책이나 윤리 기준 논의는 이러한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 2024년 기준 4~6년제 대학생 726명 중 91.7퍼센트(%)가 과제나 자료 검색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경험이 있다고 한국직업능력연구원(KRIVET, Korea Research Institute for Vocational Education and Training)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그러나 전국 대학 131곳 중 71.1퍼센트(%)는 아직 생성형 인공지능(AI)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라고 한국대학교육협의회(KCUE, Korean Council for University Education)는 전했다.

학생들의 인공지능(AI) 의존도가 커지면서 스스로 사고하는 힘이 저하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기인 경희대학교(Kyung Hee University)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걷는 법을 배워야 할 학생들이 (인공지능(AI)로) 오토바이 타고 가는 상황"이라며 "인공지능(AI) 의존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시대의 교육과 평가 방식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인공지능(AI)의 적극적인 사용을 허용하되 출처를 투명하게 밝히게 하자는 등의 제언이다.

김명주 인공지능(AI)안전연구소 소장은 "인공지능(AI) 결과물뿐 아니라 개인 의견을 적어내게 해 비판적 사고를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호 고려대학교(Korea University) 인공지능(AI) 연구소장은 "대면 발표나 심층 토론 같은 새로운 교육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