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항소 포기' 거센 후폭풍…정진우 중앙지검장 전격 사의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이 '대장동 항소 포기’로 사의를 표명한지 하루가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의 모습.사진=연합뉴스


대장동 사건의 수사 및 공판을 담당했던 검사들이 검찰의 항소 포기 결정이 민간업자들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을 안겨준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하여 검찰 내부의 반발, 즉 '검란(檢亂)' 조짐이 일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인해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지적이 9일 제기되었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이날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린 글에서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고 주장했다.

김 검사는 1심 재판부가 유사 사례의 법리만을 토대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죄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추징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항소 포기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죄의 중요 쟁점인 재산상 이익 취득 시기 등에 대한 상급심의 판단을 받을 기회조차 잃었다"고 강조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한 '대장동 일당'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하지 않았으나, 피고인 5명은 모두 항소했다.

형사소송법상 피고인만 항소할 경우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더 높은 형을 선고할 수 없다.

이러한 항소 포기로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는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앞서 검찰은 1심에서 피고인들이 총 7천886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판단하며 전액 추징을 요구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정확한 손해액 산정이 불가능하다는 이유 등으로 뇌물액인 473억3천200만원만 추징했다.

이로 인해 향후 2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추징할 수 있는 범죄수익의 상한은 473억원으로 제한된다.

김 검사는 이번 항소 포기에 대해 대검찰청 차장 및 중앙지검장에게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며 "2024년 11월 8일 0시 검찰은, 그리고 진실은 죽었다"고 비판했다.

통상적으로 검찰은 선고 결과에 대해 무죄 부분과 양형 분석, 공소심의위원회를 거쳐 항소 타당성을 검토한 자료를 바탕으로 상부 결재를 받는다.

김 검사는 법무연수원 시절 자신의 교수였던 중앙지검장이 '머리보다 큰 감투를 쓰면 눈을 가린다'고 했던 말을 인용하며, 현 대검 차장 및 반부패부장, 중앙지검장이 "머리보다 큰 감투를 쓰셔서 눈이 가려지신 건가"라고 직격했다.

의원 질의 답변하는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 10월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장동 사건의 수사 및 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 또한 이날 내부망에 올린 '대장동 개발 비리 관련자 5명에 대한 1심 판결 항소 필요성' 글에서 "일부 무죄가 선고된 부분에 대해 법리 오해 및 사실 오인을 항소 이유로 상급심의 판단을 구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강 검사는 뇌물죄 등이 배임죄에 흡수된다는 1심 재판부의 판단이 맞다면 최소한 손해액 428억원 이상인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배임)죄는 인정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김만배씨와 유동규 전 본부장이 주고받기로 한 거액은 별도의 뇌물죄가 성립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해당하는 범죄수익의 환수 문제"라고 지적하며, "항소 포기로 남욱 변호사 및 정영학 회계사를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되었고, 김만배씨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0분의 1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왼쪽 부터 남욱, 정영학, 정민용.사진=연합뉴스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는 대장동 개발 사업을 설계하고 실행을 주도한 인물이며, 로비를 위해 기자 출신 김만배씨를 영입했다. 이들은 유동규 전 본부장과 결탁하여 불법을 저질렀다는 것이 1심의 판단이었다.

남 변호사는 대학 후배인 정민용 변호사를 유 전 본부장에게 추천하여 성남도시개발공사에 팀장으로 입사시켰고, 정민용 변호사가 속한 전략사업팀은 공모지침서 작성 등 일당에게 유리한 사업 구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 밖에도 울산지검 천영환 검사는 "수사 검사 및 공판 검사의 항소 제기 만장일치 결정에 법무부와 대검이 반대한 이유가 무엇이냐"며 "국민에 대한 배임적 행위를 한 법무부 장관과 대검 수뇌부의 사퇴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천 검사는 "법률과 적법 절차에 의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법무부와 대검이 특정인들을 법률과 재판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강하게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