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자신의 연설을 의도적으로 짜깁기해 왜곡 보도한 영국 비비시(BBC, 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 방송에 법적 조치를 경고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BBC가 10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에이에프피(AFP) 통신과 미국 매체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측은 BBC에 오는 14일까지 요구하는 조처를 이행하지 않으면 10억 달러(약 1조4천5백70억 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통보했다.
◆ 연설 짜깁기 의혹과 트럼프 측 요구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BBC에 보낸 서한에서 문제가 된 다큐멘터리 등에 등장한 '거짓되고 명예훼손적이며 비방적이고 선동적인' 언급들을 완전하고 공정하게 철회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BBC 편집 지침 및 기준 위원회(EGSC) 위원을 지낸 마이클 프레스콧이 BBC 이사회에 보낸 메모에 따르면, BBC는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 직전 방영된 '트럼프: 두 번째 기회?'라는 특집 다큐멘터리에서 2021년 1월 6일 미국 의회 폭동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편집하여 삽입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세 부분을 마치 하나의 문장처럼 짜깁기하여 그가 의회 폭동을 선동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BBC 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을 검토한 후 적절한 시기에 답변할 것이라고 밝혔다.
◆ BBC 수뇌부 사임 및 회장의 '판단 오류' 인정
연설 짜깁기 논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지난 9일 팀 데이비 BBC 사장과 데버라 터네스 뉴스·시사 총책임자가 사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임 발표 직후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 "BBC 수뇌부가 나의 훌륭한 1월 6일 연설을 조작했다가 그만두거나 잘렸다"며 "이들은 대선 저울에 발을 대려 한 아주 부정직한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영국 개혁당의 나이절 패라지 대표는 10일 스카이뉴스(Sky News)에서 자신이 지난 7일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했다고 밝히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게 최고 동맹국에 할 일인가"라고 강하게 불만을 표했다고 전했다.
로이터(Reuters) 통신에 따르면, 사미르 샤 BBC 회장은 이날 영국 의회에서 BBC가 "연설이 편집된 방식이 (지지자들에게) 폭력적 행동을 직접 촉구했다는 인상을 줬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판단 오류에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 BBC의 공정성 주장과 영국 총리실 지지
그러나 사미르 샤 BBC 회장은 마이클 프레스콧의 메모와 관련하여 BBC 이사회가 편향성 우려 제기를 무시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개별적인 실수나 잘못은 있을 수 있지만, BBC에 체계적이거나 제도적인 편향성이 있다는 비판은 사실이 아니며, "BBC 뉴스의 디엔에이(DNA, Deoxyribonucleic acid)와 문화는 공정성"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총리실 대변인 역시 이날 취재진의 관련 질문에 "키어 스타머 총리는 BBC가 제도적으로 편향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BBC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대변인은 BBC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높은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