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열린 미 예방접종자문위원회(ACIP) 회의.사진=연합뉴스

미국 백신 접종 정책을 좌우하는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산하 예방접종자문위원회(ACIP)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신생아 B형 간염 예방접종 보편적 권고'를 12월 5일(현지시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ACIP는 이날 회의에서 신생아의 B형 간염 백신 접종을 '바이러스 양성으로 나오는 1퍼센트(%) 미만의 산모가 낳은 신생아'에게만 권고하는 안을 표결로 채택했다.

이는 1991년 도입된 보편적 권고가 34년 만에 폐기되는 이례적인 결정으로, 보건 당국의 정책 변화가 의료계에 상당한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 신생아 B형 간염 백신 권고 폐기 상세 내용과 변화

기존에는 신생아의 B형 간염 감염을 최대한 빨리 차단하고자 생후 24시간 안에 B형 간염 백신을 접종해 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B형 간염에 걸린 신생아 중 약 95퍼센트(%)는 만성 간염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권고안에 따르면 ACIP는 산모가 바이러스 음성인 경우 신생아의 B형 간염 백신 접종 시작 여부와 시기를 의료 제공자와 산모가 논의하도록 했다. 또한 생후 2개월이 지날 때까지는 첫 접종을 하지 않도록 변경했다.

추가 접종 시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현재 첫 접종 후 1~2개월째와 6~18개월째에 이루어지는 추가 접종 전에 'B형 간염 항체 검사'를 받도록 했다.

이 권고안은 CDC에 최종 채택될 가능성이 크며, CDC 소장은 ACIP의 권고안을 대부분 채택해 온 전례가 있다.

◆ '백신 회의론자' 보건복지부 장관 취임 후 정책 변화와 논란 증폭

이번 결정은 '백신 회의론자'로 알려진 로버트 케네디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6월 취임한 이후 기존의 백신 정책을 뒤집는 일련의 조치 중 하나로 평가된다.

케네디 장관은 취임 후 모든 ACIP 위원을 해임하고 자신의 성향과 맞는 인사들로 위원회를 급조하면서 의료계 및 보건학계와 큰 마찰을 빚어왔다.

소아 감염병 전문가인 플로르 무뇨즈 박사는 이번 결정에 대해 "근거 없는 주장에 기반했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극도로 혼란스럽고 실망스럽다"고 심경을 밝혔다.

빌 캐시디 공화당 상원의원(루이지애나) 또한 "수십 년간 B형 간염 환자를 치료해 온 전문의로서, 이 백신 일정 변경은 실수"라고 지적했다.

ACIP의 이러한 권고는 명목상 '권고'지만, 실제로는 건강보험의 보장 범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백신 접종 비용이 급등하고 의료 제공자의 법적 책임 부담이 커져 사실상 백신 접종이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 트럼프 행정부의 광범위한 보건 정책 기조 변화 주목

미국 보건 당국은 케네디 장관 취임 이후 기존 정책을 뒤집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노인 같은 고위험군에도 권하지 않도록 했으며, 4세 이전에는 홍역 볼거리 풍진 수두(MMRV, Measles Mumps Rubella Varicella)를 한 번에 예방하는 혼합백신을 접종하지 말라는 권고안을 채택한 바 있다.

지난 9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신 중 타이레놀 복용이 자폐아 출산 위험을 높인다며 "타이레놀을 복용하지 말라"고 발표해 논란을 촉발하기도 했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의 보건 당국은 전통적인 의학적 합의와 거리가 먼 정책들을 연이어 내놓으며 의료 시스템 전반에 걸쳐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으며, 이는 미국 공중보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