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과 트럼프의 8월 알래스카 정상회담.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한다고 밝히자,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이 복잡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번 회담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논의하는 자리로 주목되지만, EU 내부의 불협화음과 외교적 딜레마를 드러낸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17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회담에 대해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올로프 길 수석부대변인은 “우크라이나의 정의롭고 항구적인 평화를 진전시킬 수 있는 회담이라면 환영한다”고 말했다.

아니타 히퍼 외교안보 담당 대변인도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노력을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집행위는 헝가리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EU를 대표할 수 있는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푸틴 회담 가능성 등 구체적 질의에는 “회담 일정이 확정되지 않아 가정적 질문에 답하지 않겠다”며 선을 그었다.

EU는 지난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와 외교적 소통을 사실상 단절하고, 현재 19차 대러시아 제재안을 논의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이 헝가리에서 EU 영토 내 회담에 참석한다면, EU의 대러시아 제재 노력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헝가리는 우크라이나 지원과 대러시아 제재에 지속적으로 반대하며 EU 내 갈등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헝가리는 이번 정상회담을 2주 내 개최를 목표로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며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적극 환영 의사를 밝혔다.

푸틴 대통령의 헝가리 방문은 국제형사재판소(ICC, International Criminal Court)가 발부한 전쟁범죄 혐의 체포영장 이후 첫 EU 영토 방문이 될 가능성이 있다.

헝가리는 지난해 4월 ICC 탈퇴를 선언했으나, 탈퇴 효력은 내년 4월부터 적용된다.

원칙적으로 헝가리는 ICC 로마조약 당사국으로서 푸틴 대통령 입국 시 체포영장 집행에 협조할 의무가 있지만, 실제 집행 가능성은 낮다.

집행위는 “모든 회원국은 2023년 EU 정상회의 결론에 따라 ICC와 완전한 협력을 보장해야 한다”며 헝가리의 의무를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서유럽 고위 당국자는 로이터 통신(Reuters)을 통해 “이번 회담은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모두에 곤란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토마호크 장거리 순항미사일 지원을 논의하자, 푸틴이 회담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결과를 낸다면 긍정적이지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U 내에서는 회담이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U 고위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8월 알래스카 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배신당한 경험이 있다”며 “이번 회담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신경 쓸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헝가리가 러시아 항공기 EU 영공 진입 금지 제재를 예외적으로 완화해 푸틴 대통령의 전용기 입국을 허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