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협상 후 미 상무부 나서는 김용범 정책실장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미국 상무부 청사에서 한미협상을 마친 뒤 건물을 나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미 간 관세 및 무역 협상 후속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국 정부의 각료급 고위 관계자들이 16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 측과 집중적인 협상을 벌였다.

한국의 3천500억 달러(약 500조 원) 규모 대미(對美) 투자 패키지 구성 방안을 놓고 양측이 이견을 보이며 두 달 넘게 지속되어 온 교착 상태가 해소됨으로써, 오는 31일 경주에서 개막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정상회의 계기에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최종적인 결과물이 도출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3천500억 달러 투자 패키지, APEC 정상회담 앞두고 '고심'

이번 협상팀에는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그리고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총 4명의 각료급 인사가 참여했다.

김정관 장관과 김용범 실장, 여한구 본부장은 이날 오후 워싱턴디씨(Washington D.C.)의 상무부 청사를 찾아 하워드 러트닉(Howard Lutnick) 상무장관 등과 2시간여 협상을 진행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온 김용범 실장은 성과에 대한 연합뉴스 기자의 질문에 "2시간 동안 충분히 이야기를 했다", "2시간 동안 회의를 했다"고 말을 아끼며 진전 여부에 대해 즉답을 피했다.

17일에도 협상을 속개할지는 현재로선 파악되지 않고 있으나, APEC 정상회의 개막 전 약 10일 간 양측 사이에 합의문 도출을 위한 긴박한 밀고 당기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번 회동은 그간 가장 큰 쟁점이었던 3천500억 달러 투자 패키지 구체화를 두고 상당한 이견을 보이던 양측 입장이 어느 정도 접점을 찾아가는 흐름 속에 이뤄졌지만, 합의문을 만들 정도로 의견 차이가 좁혀졌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정관 장관, 미국 상무부 장관 면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7월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회의실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과 면담, 기념 촬영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 '마스가' 협력 속 중국 견제…미국, 한화오션 제재에 "무책임한 시도" 비난

협상팀의 또 다른 주요 의제는 한미 간 조선 협력 방안인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였다.

김용범 실장은 입국 직후 취재진에 "지금까지와 비교해볼 때 양국이 가장 진지하고 건설적 분위기에서 협상하고 있는 시기"라며,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협상이 잘 마무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정관 장관과 김용범 실장, 여한구 본부장은 이날 첫 일정으로 백악관 업무 시설인 아이젠하워 행정동을 찾아 러셀 보트(Russell Vought)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 국장과 50분여간 면담하며 양국 간 조선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김정관 장관은 면담 후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에 "'마스가'에 대해 여러 가지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밝혔다.

'마스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 '조선(Shipbuilding)'을 조합한 것으로, 한국의 세계적 조선 기술과 미국의 조선업 부흥 의지가 결합하여 중국과의 글로벌 패권 경쟁에 대응하려는 전략이다.

이러한 협력 강화 움직임 속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16일(현지시간) 중국이 최근 한화오션을 제재한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했다.

미국 국무부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 질의에 대한 대변인 명의의 답변에서 중국의 행위를 "민간 기업의 운영을 간섭하고, 미국 조선 및 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미 협력을 약화시키려는 무책임한 시도"라고 비난했다.

국무부는 또한 "중국의 행동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의 경제 협력 강화의 중요성을 재확인시켜줄 뿐이며, 한국을 강압하기 위한 중국의 오랜 패턴의 최근 사례"라고 덧붙이며 "우리는 한국과 단호히 함께하겠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 5곳을 제재했는데, 여기에는 지난 8월 이재명 대통령이 방문한 바 있는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주 필라델피아(Philadelphia)의 한화 필리조선소(Hanwha Philly Shipyard Inc.) 등이 포함된다.

한미조선협력 논의 후 백악관 나서는 김용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16일(현지시간) 한미무역협상의 일환으로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을 방문했다. 김 실장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과 함께, 한미 무역합의의 일환으로 추진중인 한미 조선협력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에 대해 백악관 당국자들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이 협의를 마친 뒤 백악관을 나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한국 외환 시장 안정 우려…대미 투자 방식 조율 '변수'

한편,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미국에 도착해 협상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및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세계은행(WB, World Bank) 연차총회 참석차 방미했으나, 스콧 베선트(Scott Bessent) 미 재무장관과 만나 한미 무역 협상 관련 소통을 이어갔다.

구 부총리는 베선트 장관에게 대미 투자 선불 요구가 한국 외환 시장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하고, 한국의 대미 투자금 공급 기간을 10년 등 장기로 늘려 일시적 달러(Dollar) 부족 상황을 피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 부총리는 이날 아이엠에프(IMF) 본부에서 특파원단과 만나 "실무 장관(베선트)은 (3천500억 달러 전액 선불 투자가 어렵다는 한국 정부 입장을) 이해하고 있는데, 얼마나 대통령을 설득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느냐 하는 부분은 진짜 불확실성이 있다"며 신중한 전망을 내놓았다.

이처럼 3천500억 달러 대미 투자 방식의 최종 조율이 한미 무역 협상의 막판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