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피격사건'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결심공판 출석
2020년 9월 서해에서 발생한 공무원 피격 사건을 은폐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발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하여, 사건을 은폐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인사들의 1심 변론이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 심리로 마무리됐다.

재판부는 다음 달 12월 26일 오후 2시, 이 사건에 대한 선고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는 피고인들이 2022년 12월 기소된 이후 약 3년 만이다.

이날 결심 공판에는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 노은채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이 출석했다. 검찰은 이들 모두에게 실형을 구형하며 혐의의 중대성을 강조했다.

'서해 피격사건'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결심공판 출석
2020년 9월 서해에서 발생한 공무원 피격 사건을 은폐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검찰, 피고인들에 실형 구형하며 '공권력 악용' 지적

검찰은 이날 공판에서 피고인들 모두에게 실형을 구형했다.

서훈 전 실장에게는 징역 3년, 박지원 전 원장에게는 징역 2년 및 자격정지 2년을 구형했다.

서욱 전 장관에게는 징역 3년을,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에게는 징역 3년을, 노은채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에게는 징역 1년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구형에 앞서 "고위공직자인 피고인들이 과오를 숨기기 위해 공권력을 악용하고 공용 전자기록을 삭제한 뒤, 피격 후 소각된 국민을 월북자로 둔갑시켰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을 속이고 유가족도 사회적으로 매장한 심각한 범죄"라며 책임을 물었다.

구체적인 혐의 내용과 관련하여, 검찰은 서훈 전 실장에 대해 "국가 위기 상황에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함에도 아무런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피격·소각 사실을 알고도 이를 은폐할 것을 기획·주도한 자로, 이 사건 최종 책임자로서의 죄책이 무겁다"고 강조했다.

박지원 전 원장에 대해서는 "국가정보원장으로서 북한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기관의 수장임에도 안보실장의 은폐 계획에 적극 동참했다"고 혐의를 설명했다.

서욱 전 장관에게는 "군 지휘 감독의 책임자로, 합동참모본부(합참)로부터 우리 국민이 발견됐다는 사실을 보고받고도 구조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결심공판 전 입장 밝히는 서해 피살 공무원 유족
서해공무원 피살사건 공무원의 친형인 이래진 씨가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서욱 전 국방부 장관,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 등의 '서해 피격 사건 은폐 시도 및 월북몰이 혐의' 관련 결심공판 시작 전 취재진에 입장을 밝히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날 법정에는 피격으로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의 형 이래진 씨가 직접 출석했다.

이 씨는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국민 발표에서 북한과 연락할 채널이 없어 구조와 송환 요구를 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대통령이자 국군통수권자로서 무책임하고 무능한 대국민 사기 발언 아니겠느냐"고 주장하며 울분을 토했다.

이 씨는 "엄청난 조작과 살인이 이루어지는 동안 국가와 안보라인, 수사라인이 국민을 지키지 않았고, 북한이 저지른 살인 과정을 지켜봤단 건 공직자로서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지원·서훈·서욱 등 文정부 안보라인, '서해 피격사건' 결심공판 출석.사진=연합뉴스


◆ 피고인 측 "기획된 수사… 월북 추정 근거 충분" 반박

이어진 최후변론에서 각 피고인의 변호인들은 이 사건이 윤석열 정권에서 기획한 '월북몰이' 수사라며 무죄임을 강조했다.

서훈 전 실장 측 변호인은 "이 사건 수사는 결국 정무적인 동기로 기획되었고, 처음부터 결론이 정해진 수사라는 점이 매우 명백하다"며 "범죄 사실이 구성될 수 없고, 입증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박지원 전 원장 측 변호인은 "이대준 씨가 자진해 월북 의사를 밝힌 첩보와 한자가 적힌 구명조끼를 착용했다는 첩보 등을 종합하면 자진 월북을 인정하기에 충분한 근거"라며 "검사의 공소사실은 그 전제로 주장하는 월북몰이가 첩보에 의해 인정되는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억지 주장이며,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반박했다.

서욱 전 장관 측 변호인 역시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서 전 장관 측은 "당시 피고인은 민감한 특수정보(SI, Special Intelligence)를 보안 유지하라고 하고, 취득된 정보를 기초로 서해 공무원의 월북이 추정되지만 최종 결론은 수사를 통해 확정하자고 딱 두 가지만 지시했다"며 "재판 3년 내내 월북 판단이 적절하냐가 쟁점이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형사사법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최후진술에서 서훈 전 실장은 "오랜 세월 공직 경험을 통해 제가 깨달은 건 한 정권의 단기적 이해를 위해 국민을 속여서는 안 되고 또 그럴 수도 없단 것"이라며, "새 정부가 시작되자마자 새 대통령으로부터 이 사건이 시작됐다. 정부에서는 연일 일방적인 내용을 브리핑했고,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참고인을 선별적으로 추출해 언론에 알려주며 여론몰이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지원 전 원장은 "이 사건은 파면당한 윤석열 대통령이 기획·지시하고, 국가정보원(국정원) 일부 직원들과 감사원, 검찰이 공모해 실행한 사건"이라며 "윤석열 대통령 정권은 제가 월북몰이를 공모했고, 국정원의 군 첩보 및 보고서를 삭제·은폐했다고 했지만 60여 차례 재판에서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고 했다.

박 전 원장은 이어 "저는 당연히 검찰이 공소취소를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데, 안 하지 않느냐. 자기 잘못은 털끝만큼도 인정하지 않는 파렴치한 검찰"이라면서 "검찰에 25년간 당한 것을 생각하면 피가 끓는다. 배운 사람들이, 고시 합격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하느냐"고 격앙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욱 전 장관은 "서훈 전 실장과 공모한 사실은 추호도 없다. 은폐라는 건 당시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수많은 군 관계자가 인지하고 있는 사항이라 가능하지도 않다"며 "다만 당시 정부 차원 조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외부로 유출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양측의 주장과 변론을 들은 뒤 "오직 증거에 의해서만 유·무죄 판단을 하겠다"며 "말씀하신 부분을 깊게 검토해 추호라도 억울하신 부분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선고기일을 다음 달 12월 26일 오후 2시로 지정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 당시 청와대 안보실과 관계기관의 초기 대처.사진=연합뉴스


이 사건은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가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살해된 사건을 2022년 6월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감사원은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고, 국가정보원(국정원)도 박지원 전 원장 등을 고발했다.

검찰은 2022년 12월 이들을 순차적으로 기소했다.

서훈 전 실장은 이 씨가 피살된 이튿날인 2020년 9월 23일 오전 1시경 열린 관계 장관회의에서 피격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합참 관계자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에게 '보안 유지' 조치하라고 지시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이 외에 피격 사실을 숨긴 상태에서 해양경찰에 이 씨를 수색 중인 것처럼 허위 보도자료를 배포하게 한 혐의, '월북 조작'을 위해 국방부와 해양경찰에 보고서와 발표 자료 등을 작성하도록 한 뒤 배포한 혐의도 포함된다.

김홍희 전 청장은 이 같은 지시에 따라 월북 가능성에 관한 허위 자료를 배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박지원 전 원장과 서욱 전 장관, 노은채 전 비서실장도 '보안 유지' 방침에 동조하여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직원들에게 관련 첩보와 문건 등을 삭제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