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발전과제 보고회에서 발언하는 정청래 대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호남 발전과제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 국회가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심사하는 중대한 시점에,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지난 20일 '호남발전전략 보고회'에서 “국민주권시대를 열어준 호남에 확실히 보답하겠다”며 특정 지역에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 편성을 공언했다. 이재명 정부가 편성한 총 728조원 예산 중 광주 3조6천616억원, 전남 9조4천183억원, 전북 9조4천585억원 등 호남 지역에만 총 22조 5천억원 이상이 배정되었다는 그의 발언은 단순한 지역 발전의 약속을 넘어선다. 이는 마치 국가 재정을 특정 정치적 행위에 대한 '대가'로 치환하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며,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핵심 가치인 공정성과 통합을 저해하는 노골적인 포퓰리즘적 행태로 강력히 비판받아 마땅하다.

국가 재정은 전체 국민의 혈세로 조성되며, 그 배분은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 유불리나 특정 지역의 '공로'에 대한 보상이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예산 편성은 경제적 효율성, 사회적 형평성, 국가 전체의 균형 발전을 위한 객관적 기준과 절차를 따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 여당의 대표가 공개적으로 '보답'이라는 정치적 언어를 사용하며 특정 지역에 대한 막대한 예산 집행을 공언하는 것은, 국가 예산을 특정 정파와 지역의 전유물로 착각하는 오만함의 발로라 할 수 있다.

과거 정권에서도 지역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특정 지역에 대한 예산 지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례로 지난 2014년 당시 보도를 보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에서 지역구 예산 증액 상위 20개 사업 중 10개가 영남 지역 사업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는 당시 여당의 정략적 계산이 배경에 있었다고 비판받아 왔으며, 어느 정권에서든 국가 재정의 사유화이자 특정 지역 편중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이번 더불어민주당의 '호남 보답' 발언은 과거의 논란을 넘어, 마치 과거의 정치적 빚을 갚듯이 국가 재정을 명시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냄으로써 심각한 수준의 지역 편중을 공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거 어떠한 정부도, 설령 특정 지역에 대한 예산 배분이 있었다 할지라도, '보답'이라는 정치적 색채를 이토록 짙게 입히며 공공연히 추진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그 파괴력이 더욱 크다. 정치적 이득을 위해 국가 재정을 활용하겠다는 명백한 선언은, 지역 간 건전한 경쟁과 협력을 저해하고 불필요한 위화감을 조성하여 ‘지역 역차별’이라는 국민적 분노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 한쪽 지역에 '보답'이라는 명목으로 예산을 몰아주는 것은 다른 지역에는 '역차별'이라는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며, 이는 필연적으로 지역 간의 갈등과 반목을 심화시킬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지역 감정이라는 해묵은 갈등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 여당이 직접 나서서 이러한 지역 감정을 자극하고 부추기는 것은,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가의 미래와 국민 통합을 희생시키는 무책임한 처사라 할 수 있다.

정 대표가 호남 발전을 위해 제시한 인공지능(AI) 모빌리티 국가시범도시 사업, 통합의과대학 설립, 재생에너지 100퍼센트(RE100) 첨단 산업단지 조성 등 대규모 사업들이 과연 해당 지역의 자생적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에 따라 최적의 형태로 추진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지역의사제 도입을 약속했고, 국정과제에도 포함된 뒤 당정의 공감대 속에 급물살을 탔던 전례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객관적 타당성보다는 정치적 약속이 우선시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특히 예비타당성 조사 기준 금액을 1천500억원(국비 900억원)으로 상향하는 등의 조치는 재정 건전성을 위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마저 무력화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지방정부 재정 강화법' 제정 논의 또한 비수도권의 균형 발전을 위한 큰 그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특정 지역에 대한 선별적 지원으로 오인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정책적 접근은 단기적 성과에 급급하여 장기적인 국가 발전 전략을 훼손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가는 특정 지역이 아닌 모든 국민을 위한 재정 운용의 책무를 진다. 정파적 이익과 당리당략에 따라 예산이 좌지우지되는 현실은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저해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국가 재정을 정치적 '보상금'처럼 활용하려는 구태를 즉각 중단하고,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예산 배분 원칙으로 회귀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로 인한 지역 간의 불필요한 갈등과 국민적 통합의 저해라는 거대한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대한민국의 몫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와 국가 통합을 훼손하는 어떠한 시도를 한다면, 엄중한 국민적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를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