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케네디 미 보건복지부 장관.사진=연합뉴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이하 케네디)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2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가 수십 년간 유지해온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을 직접 지시해 대폭 수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1998년 가짜 연구로 촉발된 반백신 운동의 오정보를 재확인하는 듯한 조치로, 공중보건 전문가와 과학계에서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케네디는 “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 백신과 수은 기반 보존제 티메로살(thimerosal)에 대한 대규모 역학 연구들은 자폐증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백신 안전성 연구에는 여전히 공백이 존재한다”며 “백신이 철저히 테스트됐고 그 결과가 확정됐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단언했다.

이에 따라 CDC 웹사이트는 기존 “연구에서 백신 접종과 자폐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발병 간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명확한 부정 문구를 “유아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했다”는 표현으로 바꿨다.

자폐증은 뇌 신호 장애로 비전형적 행동·커뮤니케이션·학습을 유발하는 신경발달 장애로, 원인은 유전·환경 요인으로 연구 중이나 백신 연관은 수백 건의 대규모 연구에서 명확히 부정됐다.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전 세계 보건당국은 같은 날 “증거상 백신과 자폐증 연관 없음”을 재확인하며 우려를 표했다.

◆ CDC 조직 대폭 개편… 수천 명 과학자 해임·사임, 반백신 인사 전면 배치

케네디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CDC를 철저히 재편했다.

올해 수천 명의 CDC 경력 과학자들이 해임되거나 자진 사임한 가운데, 데이비드 기어 등 백신 안전성에 회의적인 인사들이 데이터 검토를 전담하고 있다.

기어는 의학 자격증이 없는 상태에서 백신-자폐증 연관을 주장하며 여러 논문을 발표했으나, CDC로부터 데이터 오용으로 제재받은 전력이 있다.

8월에는 수잔 모나레즈 국장을 백신 정책을 이유로 해임하고, 과학자가 아닌 짐 오닐 부장관을 대행 국장으로 임명했다.

오닐은 실리콘밸리 투자자로, 코로나 팬데믹 기간 CDC를 비판하며 이vermectin 같은 비과학적 치료를 옹호한 바 있다.

백신 정책 자문위원회(Advisory Committee on Immunization Practices, ACIP) 17명 전원을 해임하고 케네디 측근으로 교체한 데 이어, 다음 달 초 B형 간염 백신 권고안을 재검토할 예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CDC 과학자는 “자폐증 연구 담당 직원들은 아무런 상의 없이 웹사이트가 바뀌었다”며 내부 혼란을 토로했다.

보스턴 대학교 자폐증 전문가 헬렌 태거-플러스버그 교수는 “CDC가 사실상 해체됐다”고 비판했다.

전 CDC 관계자 피오나 하버스는 6월 백신 정책 반대로 사임한 뒤 “케네디의 정치적 임명자들이 CDC를 무기화하고 있다”며 “경력 과학자들이 완전히 배제됐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임신부 타이레놀 사용과 자폐증 연관성을 주장하며 반백신 정서를 부추겼다.

◆ 과학계 “보편 부정 증명 불가능 꼼수” 비판… 대규모 연구 무시

과학계는 변경된 웹사이트 문구를 “논리적 꼼수”로 규탄했다.

스탠퍼드 의대 제이크 스콧 교수는 “백신이 자폐증을 절대 유발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할 수 없다는 주장은 보편 부정을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꼼수”라며 “과학자들은 MMR 백신과 자폐증 연관을 배제하는 수백 건의 대규모 연구를 수행했다”고 반박했다.

CDC가 인용한 2012년 의학연구소(Institute of Medicine) 리뷰는 MMR 백신 관련 연구 중 4건을 제외한 대부분에 “심각한 방법론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으나, 리뷰의 핵심 결론은 “증거가 MMR 백신과 자폐증 간 인과관계를 배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변경된 웹사이트는 이 결론을 생략하고 “가능성 배제 못 했다”만 강조했다.

전 FDA 수석 과학자 제시 굿먼은 “웹사이트가 2019년 덴마크 66만 명 대상 대규모 연구 등 자폐증과 백신 무연관성을 입증한 연구를 무시한다”며 “인용된 연구들은 주요 결함이 있고 자폐증 진단 요인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 반백신 단체 환영… 헤더 유지에도 캐시디 상원의원과의 약속 파기 논란

케네디가 과거 이끌던 반백신 단체 어린이 건강 수호(Children's Health Defense)는 X(엑스)에서 “CDC가 백신-자폐증 거짓말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며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글로벌 반백신 정서를 부추길 우려를 낳고 있다.

CDC 웹사이트는 여전히 상단에 “Vaccines do not cause autism”(백신은 자폐증을 유발하지 않는다) 헤더를 유지하고 있으나, 이는 공화당 빌 캐시디 상원의원(루이지애나주)과의 2월 합의에 따른 것이다.

케네디는 당시 캐시디 의원의 지지를 얻기 위해 “CDC 웹사이트 문구를 변경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번 조치로 그 약속이 사실상 깨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 추가 백신 정책 변화… 임신부·어린이 코로나 백신 권고 철회, 연구 예산 삭감

케네디는 이미 임신부 및 어린이 대상 코로나 백신 권고를 철회하고 관련 연구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다음 달 B형 간염 백신 권고안 재검토도 예정돼 있다.

이는 케네디가 장관 취임 후 백신 정책을 대대적으로 개편한 맥락에서 이뤄졌으며, HHS 대변인 앤드루 닉슨은 20일 변경을 옹호했으나, 누가 지시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답변을 거부했다.

출처: RFK Jr. told CDC to change website's language on autism and vacci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