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중국.사진=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을 계기로 중국과 일본 간 여론전이 격화하며 양국 관계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양국은 역사적 맥락을 거론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는 등 전방위적인 공방을 벌이고 있으며, 중국은 군사 및 경제적 압박을 강화하는 양상이다.

주일 중국대사관은 지난 21일 엑스(X, 구 트위터) 계정에 일본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군국주의 국가로 지적하는 글을 게재했다.

중국대사관은 유엔 헌장의 '적국 조항'을 언급하며,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파시즘 또는 군국주의 국가가 침략 정책을 위한 행동을 취할 경우 중국, 프랑스, 미국 등 유엔 창설국이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허가 없이 직접 군사 행동을 할 권리를 보유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일본이 대만 유사시를 이유로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경우 중국이 무력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통해 일본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교도통신은 '적국 조항'에 해당 국가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1995년 유엔 총회에서 해당 조항의 조기 삭제를 요구하는 결의가 채택되는 등 일본 정부가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필리핀 중국대사관은 엑스 계정에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평화 헌법을 불태우고 군국주의를 부활시킨다는 내용의 만화를 게재하며 "다카이치 총리는 무모한 발언으로 대만 해협에 대한 군사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으며, 이 경우 중국은 반드시 반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발언과 관련하여 연일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2일 주요 국제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종소리 논평을 통해, 다카이치 총리의 언행이 "자신의 정치적 사리사욕을 위해 국가의 미래와 세계 평화·안정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며,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멸망하게 되는 위험한 국면으로 일본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민일보는 또한 다카이치 총리가 소위 '존망의 위기'를 과장하여 실질적으로는 군사적 규제를 완화하고 개헌 및 군비확장을 추진하려는 구실을 찾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위험한 동향은 전후 국제질서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자 일본 국민을 다시금 전쟁의 위험에 처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일본 외무성은 21일 중국이 여행 자제령의 근거로 제시한 '치안 악화'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글을 홈페이지에 게시하며 반박했다.

일본 외무성은 중국이 "올해 일본에서 중국 국적자에 대한 범죄가 자주 발생하여 안전 우려가 고조됐다"고 언급했지만, 그러한 지적은 합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외무성이 별도로 발표한 일본 내 중국인 대상 범죄 통계 문서를 보면, 살인 사건은 2023년과 2024년 각각 15건이었으나 올해 10월까지 7건으로 감소했으며, 강도 건수 역시 2023년 31건, 2024년 27건에서 올해 10월까지 21건으로 집계돼, 중국 정부의 주장을 수치 자료를 통해 반박했다.

중국 정부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다시 중단하고 여행·유학 자제령을 유지하는 등 다카이치 총리가 발언을 철회할 때까지 추가 보복 조치를 예고하며 일본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대만에 대한 기존 입장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도 중국의 발언 철회 요구는 거부하고 있다.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일 국장급 협의.사진=연합뉴스


한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 항공사의 일본행 항공편 감편이 이어지고 있다고 22일 전했다.

중국동방항공은 다음 달 1일부터 청두~오사카 노선 운항을 중단하고, 우한~오사카 노선은 주 7회에서 4회로 줄일 예정이다.

쓰촨항공도 다음 달 청두~오사카 노선을 감편하는 등 중국발 일본행 항공편 축소 조치가 현실화되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은 22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막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다카이치 총리와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간 만남이 성사될지 주목하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은 21일 기자회견에서 다카이치 총리 발언에 대해 "오해를 부를 수 있다면 향후 매우 신중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며 사실상 발언 되풀이 가능성이 낮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는 21일에도 일본을 향해 "즉각 잘못된 발언을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리 총리와 다카이치 총리 간 만남은 예정되어 있지 않다고 거듭 밝혔다.

산케이신문은 "G20 정상회의 기간 토의, 저녁 식사 전후 휴식, 대기 시간 등을 고려하면 다카이치 총리가 시기를 봐서 리 총리와 접촉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으나 "현재 중국의 자세는 더욱 강경하고, 일본 정부 내에도 (만남을) 거부하는 상대에게 억지로 접촉할 필요가 없다는 시각이 많다"며 대화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