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고층 아파트 화재참사.사진=연합뉴스


홍콩 북부 타이포 구역에 위치한 32층짜리 고층 아파트 단지 '웡 푹 코트'(Wang Fuk Court)에서 지난 26일(현지시간) 대형 화재가 발생하여 최소 65명이 사망하고 70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현재 실종자와 중상자가 많아 인명 피해는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번 화재는 홍콩이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래 최악의 인명 참사로 기록될 뿐 아니라, 지난 1948년 176명의 사망자를 낸 홍콩 창고 화재 이후 77년 만에 가장 큰 피해 규모로 평가되고 있다.

◆ 참사 규모와 비상 대응: 65명 사망, 70명 부상…77년 만 최악의 인명 피해

로이터 통신, AFP 통신, AP 통신과 홍콩 성도일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South China Morning Post) 등 외신은 27일, 홍콩 북부 타이포 구역 '웡 푹 코트'에서 지난 26일 오후 2시 51분 화재 신고가 접수되었다고 보도했다.

이 단지는 총 8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7개 동에 불이 번졌다.

4개 동의 불길은 약 10시간 만에 잡혔으나, 나머지 3개 동은 화재 발생 후 24시간 이상 지난 이날 저녁에야 비로소 진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홍콩 행정수반 존 리 행정장관은 화재 발생 약 27시간 만인 이날 오후 6시께 언론 브리핑에서 "불이 난 7개동 건물의 불길이 전부 통제됐다"고 발표했다.

홍콩 소방당국인 소방처는 이날 오후 8시 기준 사망자가 65명으로 잠정 집계되었다고 밝혔다.

사망자 가운데는 화재 진압에 투입된 소방관 1명과 인도네시아 국적 가사도우미 2명이 포함되어 있다.

사망자 수는 이날 오전 44명, 오후 55명을 거쳐 저녁에는 65명으로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이다.

부상자는 소방관 10명을 포함해 모두 70명으로 집계됐다.

존 리 장관은 화재 초기인 이날 새벽 주민 약 279명이 행방불명 상태라고 밝혔으며, 소방처는 341건의 구조 요청 중 279건에 대응했지만, 62건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홍콩 당국은 관광버스를 투입해 주민들을 대피시켰으며, 현재 주민 약 9백 명이 인근 학교 등 8곳의 임시 대피소에 머무르고 있다.

소방처는 전날 오후 6시 22분께 최고 등급인 5급으로 경보 단계를 격상하고 소방 차량 304대와 구급차 98대, 인력 1천250여 명을 동원하여 화재 진압과 수색·구조 작업을 진행했다.

홍콩 고층 아파트 화재참사
지난 26일 오후 홍콩 북부 타이포 구역의 고층 아파트단지에서 불이 나 일대에 붉은 연기가 번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화재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체포...보수공사 가설물과 가연성 소재가 피해 확산 주범

이번 대형 참사의 정확한 원인 규명에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나, 아파트 보수 공사를 위해 설치된 가설물들이 피해를 키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대규모 보수 공사 중이던 아파트 외벽에 설치된 대나무 비계(건설 현장에서 고층 작업을 위해 설치하는 임시 구조물)와 공사용 안전망을 타고 불길이 빠르게 번지면서 대형 불기둥이 치솟은 것으로 확인됐다.

홍콩에서는 금속 프레임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비계와 달리 아직도 대나무 비계가 사용되고 있으며, 당국은 지난 3월 화재·사고에 취약한 대나무 비계를 단계적으로 퇴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비계 외에도 외벽에 설치된 안전망, 방수포, 비닐막 등 가연성 소재들이 불을 이례적으로 급속 확산시킨 원인으로 지목된다고 당국은 설명했다.

홍콩 경찰은 불에 타지 않은 아파트 외벽과 건물 내부 환풍구 등에서 인화성이 강한 스티로폼 판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번 화재와 관련하여 이날 오전 아파트 단지 건물 관리회사를 압수수색했으며, 아파트 보수 공사를 맡은 업체 책임자 3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하여 조사 중이다.

주민들은 현지 언론에 화재경보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며, 경찰 관계자는 "회사 책임자들이 중대한 과실을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으며, 그로 인해 이번 화재가 발생하고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번져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존 리 행정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홍콩 전역에서 대규모 보수 공사 중인 아파트 단지들의 안전 상태를 전수 조사하도록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그래픽] '화재참사' 홍콩 초고층 아파트단지 피해 왜 컸나
홍콩 '웡 푹 코트'(Wang Fuk Court) 아파트단지 화재는 노후 밀집 건물에 설치된 보수 공사용 '대나무 비계'와 가연성 소재들을 타고 불길이 빠르게 번지면서 참사 규모를 키운 것으로 잠정 파악됐다.사진=연합뉴스


◆ 정부 및 국제 사회 반응과 후속 조치...시진핑 주석 '피해 최소화' 지시, 긴급 지원금 지급

홍콩 주권반환 이후 최악의 참사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숨진 소방관과 희생자 가족에게 위로를 전하고 피해 최소화를 지시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시 주석이 중앙정부의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 책임자를 통해 리 장관에게 구호 지원과 사후 수습 지원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눙룽 중국공산당 중앙홍콩마카오 공작판공실 부주임이 구호 지원을 위해 베이징에서 홍콩에 도착하여 부상자들이 입원한 병원과 이재민 임시 숙소 등을 방문했다고 SCMP는 전했다.

홍콩 정부는 각 피해 가정에 1만 홍콩달러(약 188만원)의 긴급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으며,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의 재단은 6천만 홍콩달러(약 113억원)를, 스포츠웨어 기업 안타그룹은 3천만 홍콩달러(약 56억원) 상당의 현금과 장비를 기부하는 등 중국 본토 기업들의 기부도 이어지고 있다.

한편, 로이터 통신은 이번 참사가 홍콩 입법회(의회) 선거와 홍콩의 반중 언론인 지미 라이의 선고 공판을 앞두고 일어났다는 점에서 중국의 홍콩 장악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전했다.

홍콩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진화 작업을 위해 주변 고속도로가 폐쇄되었으며, 타이포 지역 5개 학교는 휴교했다.

다음 달 7일로 예정된 홍콩 입법회 선거 관련 유세 활동도 전면 중단되었으며, 리 장관은 선거 연기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