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 개관식에 참석한 고인.사진=연합뉴스

노태우 정권 당시 북방외교 정책을 주도하고 남북고위급회담 실무를 담당했던 서동권 전 안전기획부장이 29일 0시17분께 서울 순천향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유족들은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고인의 파란만장했던 삶이 역사 속으로 완전히 들어섰음을 알렸다.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서동권 전 부장은 경북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재학 중이던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며 법조인의 길을 걸었고, 1961년부터 검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대검찰청 차장(1981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1982년)을 거쳐 1985년 제20대 검찰총장을 역임했다.

1987년 변호사 개업 이후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제17대 국가안전기획부장을 지내며 노태우 정권의 대북·대외정책을 총괄했다.

서동권 전 부장은 안전기획부장 재임 기간 북방외교 정책에 집중하며 1990년 1·2차 남북고위급회담 실무를 주도했다. 이는 남북기본합의서 채택과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등으로 이어져 남북관계에 큰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월간조선 2005년 5월 인터뷰에 따르면, 1990년에는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과 면담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최종 성사되지는 못했다.

이 자리에서 김일성 주석은 서동권 당시 안기부장을 '서동권 특사'로 호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고인이 노태우 대통령의 지시로 핵 개발을 추진했다는 증언도 있다.

당시 서수종 비서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말쯤 국방의 과도한 미국 의존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 징후 때문에 핵을 가져야 한다는 판단으로 준비해왔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진현 전 과학기술처 장관 또한 회고록에서 1990년 서동권 당시 안기부장으로부터 "75퍼센트(%) 국산 가능 핵 구상"을 들었다고 적었다.

1992년 대통령 정치 담당 특별보좌관을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고인은 이후 동서법률문화연구소 대표변호사로 활동했다.

1995년부터 2001년까지 검찰동우회 회장을 맡았으며, 1997년부터 1998년까지 대통령 통일고문, 1998년부터 2000년까지는 대우자판 사외이사 등을 역임했다.

개인적으로는 모교인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후원회장을 맡아 경북 지역 야구의 황금기를 이끄는 데 기여하는 등 야구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였다. 저서로는 '한국검찰사'가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유영세 씨와 2남 4녀(서진이, 서은숙<순천향병원 교수>, 서덕순<필명 '서하진', 경희대학교 교수>, 서덕귀, 서덕일<김앤장 법률사무소 미국 변호사>, 서덕홍<사업> 씨)가 있다. 사위로는 유종열(전 한국은행 국장), 남순열(하나이비인후과 원장), 박진헌(사업), 이성복(변호사) 씨, 며느리로는 정재은 씨와 한원선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되었으며, 29일 오전 11시부터 조문이 가능하다. 발인은 12월 1일 오전 9시20분이며, 장지는 경기도 광주 선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