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종전 협의를 위해 모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우측 두번째)과 스티브 위트코프(왼쪽 두번째) 미 특사.사진=연합뉴스
미국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종전안 논의가 돌파구를 찾지 못한 가운데 영토 문제가 다시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특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2일(현지시간) 종전안 협의는 양측 합의에 따라 구체적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으나, 미국 매체들은 영토 문제에서 특히 이견이 컸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협상 내용을 잘 아는 소식통을 인용해 우크라이나의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 지역을 둘러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접점이 없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돈바스 전체를 요구했으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아직 점령하지 못한 돈바스 지역을 내줄 수 없다고 맞섰다.
현재 러시아는 루한스크주를 완전히 장악했으나 도네츠크주의 약 20퍼센트(%)를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도네츠크주의 마지막 남은 20퍼센트(%)는 북쪽 슬로우얀스크와 크라마토르스크, 남쪽 드루즈키우카와 콘스티안티니우카까지 이어지는 약 50킬로미터(㎞) 구간으로 ‘요새 벨트’로 불린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러시아 지원을 받은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에게 이 지역을 탈환한 이후 10년 넘게 군사 인프라를 투입해 요새화했다.
이 요새 벨트는 러시아가 2022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영토 곳곳을 점령하면서도 정복하지 못한 전략적 요충지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저항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타협할 수 없는 지역으로, 휴전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러시아의 재침공 가능성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 패착이 될 수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돈바스 양보론이 제기될 때마다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요새 벨트를 염두에 두고 돈바스 전체에 대한 우크라이나군 철수를 줄곧 요구해왔다.
이 지역을 장악하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부터 서부 르비움까지 밀고 들어갈 추가 침공의 고속도로가 깔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위트코프 특사와 푸틴 대통령의 회담 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요새 벨트를 핵심 쟁점으로 언급했다.
루비오 장관은 “지금 그들이 싸우고 있는 것은 약 30∼50킬로미터(㎞) 공간과 남아있는 도네츠크 지역의 20퍼센트(%)”라고 확인했다.
푸틴 대통령의 외교정책 보좌관 유리 우샤코프는 이날 종전안 협의 후 “영토 문제에 관한 타협 없이는 해결책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과의 협의 전 푸틴 대통령은 도네츠크주의 남은 부분까지 장악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도네츠크주를 모두 내놓지 않으면 러시아 군대가 결국 점령할 것이라며 느긋한 입장을 내비쳤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 Institute for the Study of War)는 돈바스 전체에 대한 러시아 요구가 푸틴 대통령의 원래 전쟁 목표와 직결된다고 지적했다.
ISW는 이날 종전안 협의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애초 목표는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병합하고 우크라이나군 규모를 제한해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방어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러시아 당국자는 종전안 협의 전 미국 NBC방송 인터뷰에서 요새 벨트에 대한 러시아의 타협불가 방침을 밝혔다.
그는 “양보할 수 없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며 “첫째 돈바스, 둘째 우크라이나 병력 규모 제한, 셋째 미국과 유럽의 영토 인정”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동결자산 등 부차적 문제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대처할 준비가 돼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미국 중재안을 일부 수용했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서방에서는 이를 기만술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타협 의지가 있는 척 말하면서 점령지 문제 등 전쟁 장기화의 주된 원인이 된 쟁점에서는 진전이 없었다는 것이다.
ISW는 “푸틴 대통령은 미국 대표와의 회담 때 미국·우크라이나 평화안을 거부했고 자신의 원래 전쟁 목표에 미치지 못하는 어떠한 타협안도 계속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