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의회에 출석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사진=연합뉴스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으로 중국과 일본 간의 긴장 관계가 고조되는 가운데,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972년 중일 공동 성명'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3일(현지시간) 밝혔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이 같은 발언은 현 상황의 긴장을 완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되지만, 중국 측은 다카이치 총리의 명확한 발언 철회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South China Morning Post)는 다카이치 총리의 이날 일본 의회 발언을 두고 몇 주간 이어진 양국 간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움직임이자 한발 물러선 것으로 평가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참의원(상원) 본회의에서 대만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이 1972년 중일 공동성명 내용과 일치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정부의 기본 입장은 1972년 중일 공동성명 그대로이며 이 입장에 일절 변경은 없다"고 명확히 답했다.

1972년 중일 수교 당시 조인된 이 공동성명은 중국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명에는 "중국은 대만이 중국 영토의 일부임을 강조한다"고 명시되었으며, 일본 정부는 "이 입장을 완전히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되어 있다.

이번 갈등은 앞서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 11월 7일 중의원(하원)에서 '대만 유사시'는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 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며, 대만이 공격받을 경우 일본이 자위권 차원에서 무력 개입할 수 있다는 발언을 시사하면서 불거졌다.

이후 중국은 경제적 타격 조치를 연이어 내놓고 군사 대비 태세를 강조하는 등 갈등이 격화되었고,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 철회를 계속해서 요구하는 상황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11월 26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으로 일본은 대만에 대한 모든 권리와 권한을 포기했으며, 현재 대만의 법적 지위 등을 인정하거나 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설명했으나, 중국은 이에 반발을 이어갔다.

중국 측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유엔 헌장과 국제법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 불법·무효의 문서라는 입장이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1월 27일 "다카이치 총리가 국제법적 효력이 충분하고 중일 공동성명 등 양자 문건에서 명확히 강조된 카이로 선언·포츠담 선언에 대한 언급은 피하면서 불법·무효인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만 부각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어서 우장하오 주일 중국대사는 인민일보 기고를 통해 "일본이 해야 할 유일하게 정확한 방법은 즉시 잘못되고 터무니없는 발언을 철회하는 것"이라고 요구했으며,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일본이 근본적 시비문제에서 속임수로 빠져나가려 망상을 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다카이치 총리가 양측이 모두 인정하는 중일 공동성명을 근거로 입장 변화가 없다고 밝히자, SCMP는 이를 긴장 완화 시도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10월 31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좌)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연합뉴스


블룸버그통신도 4일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Weibo)에서 한때 '다카이치 총리가 결국 수그러들었다'는 문장이 실시간 검색 1위에 올랐다면서, 일부 중국 네티즌들은 이를 입장 후퇴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이 지난 11월 28일 "(일본 정부의 입장은) 정확히 1972년 중일 공동 성명대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밝혔음에도 중국 측의 발언 철회 요구는 이어졌다.

SCMP는 중국이 '지난 11월 7일 발언은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을 바꾸는 게 아니다'라는 식으로는 매우 부족하다며, 일관된 입장이 무엇인지 정직하고 정확하며 완전한 설명을 내놓으라고 일본을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4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러한 보도는 정확하지 않다면서 '발언 철회' 요구를 재차 강조했다.

린 대변인은 "중국의 태도는 명확하다"며 "일본이 확실히 반성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한편 다카이치 총리의 잘못된 발언을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또한 "다카이치 총리는 여전히 '입장 변화가 없다'는 말로 얼버무리려 하는데, 중국은 이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다카이치 총리가 중일 공동성명에 적힌 내용을 정확하고 완전하게 재천명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더 나아가 "일본 측은 왜 기존의 약속과 법적 의무를 분명히 말하지 않으려고 고심하는가"라면서 "그 배후의 논리나 저의가 무엇인지 중국과 국제사회에 설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밖에 롄더구이 상하이 외국어대학 일본연구센터 주임은 펑파이(澎湃) 기고를 통해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에 대해 '전략적 기만'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