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원화의 대미 달러 환율 평균이 1천470원을 넘어서며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 외환위기 이후 월간 기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달러인덱스(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는 하락하고 있으나, 내국인 해외투자 수요 등 수급 요인이 계속해서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금융권 전문가들은 올해 연평균 환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며, 내년에도 고환율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12일 원화의 대미 달러 환율은 주간 거래 종가 기준 1천473.7원을 기록했으며, 야간 거래에서는 한때 장중 1천479.9원까지 치솟았다.
환율은 지난 10월 추석 연휴 이후 상승세를 이어오며 11월부터는 1천450원 위에서 고공행진을 펼치는 중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은 지난달 원화의 대미 달러 환율 평균을 1천460.44원으로, 1998년 3월(1천488.87원) 외환위기 이후 월평균 최고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이달 들어 2주간의 평균은 이보다 높은 1천470.4원을 기록하며 원화의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
12월 미국 달러 대비 통화별 등락률 비교.사진=연합인포맥스 캡처
원화는 주요국 통화 중 유일하게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고 있다.
연합인포맥스 집계에 따르면 이달 원화 가치는 대미 달러 대비 0.69퍼센트(%) 하락했으나, 호주 달러(+1.56%), 캐나다 달러(+1.50%), 유럽연합 유로(+1.20%), 영국 파운드(+0.94%), 일본 엔(+0.17%) 등 주요국 통화는 모두 강세를 나타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달 20일 100.251에서 12일 98.404 수준으로 하락하며 10월 중순 수준으로 되돌아갔으나, 원화의 대미 달러 환율과의 괴리는 오히려 커지는 상황이다.
이러한 달러 움직임과 상이한 원화 약세 배경에는 내국인의 해외 투자 등 수급 요인이 지목된다.
한국예탁결제원 통계를 보면 지난 11월 한 달간 국내 개인 투자자는 해외 주식을 55억2천400만 달러(약 한화 8조1천130억 원) 순매수 결제했으며, 이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던 10월(68억1천300만 달러)보다는 못 미치지만 여전히 많은 규모이다.
이달 12일까지도 약 11억 달러(약 한화 1조6천170억 원)가 순매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과 기관의 환헤지(환율 변동 위험 회피), 연말 결제·송금, 대미 투자 등을 위한 달러 수요도 꾸준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25년 원/달러 환율(파란색) 및 달러인덱스(빨간색) 추이.사진=연합인포맥스 캡처/연합뉴스
김종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환율 상승 요인의 70퍼센트(%)가 국민연금과 개인 투자자 등 해외 투자가 증가한 수급 요인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에스앤티(S&T)센터 이코노미스트는 달러 매수 물량이 매도 물량을 압도하는 구조적인 현상으로 인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Federal Reserve System)의 금리 결정과 무관하게 원화 약세 현상이 지속된다고 지적했다.
이유정 하나은행 연구원은 달러 약세의 영향으로 환율이 내릴 경우 수입업체의 결제 수요 등 달러 매수세가 유입되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올해 연평균 환율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1천394.97원)의 1천420.0원을 넘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국내 달러 수급 불균형이 이어지면서 환율이 1천400원대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이낙원 엔에이치(NH)농협은행 에프엑스(FX)파생전문위원은 내년 환율을 1천400원에서 1천520원으로 예상하며 올해 4분기 연장선상에서 달러 매수세가 압박하는 장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정희 케이비(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한국과 미국의 경제 펀더멘털(기초 체력)로 볼 때 적정 환율은 1천360원 수준이나, 수급과 원화 저평가 등을 고려할 때 내년 환율 평균은 올해와 유사한 1천420원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도 환율 안정을 위해 태스크포스(TF, Task Force)를 꾸리는 등 총력 대응에 나선 만큼, 외환 당국의 개입 여부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기획재정부는 외환 수급 안정화를 위해 수출 기업의 환전 동향과 해외 투자 현황을 정례적으로 점검하고 있으며, 환전 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 수단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당국 역시 증권사의 해외 투자자 설명 의무, 위험 고지의 적정성, 빚투(빚내서 투자) 마케팅 관행 등을 점검하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을 활용한 수급 안정 방안도 논의 중으로,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한국은행, 국민연금으로 구성된 4자 협의체는 국민연금의 수익성과 외환 시장 안정을 조화시킬 수 있는 ‘뉴 프레임 워크(New Framework)’를 구축할 예정이다.
당장 올해 말 만료 예정인 외환 당국과 국민연금 간 연간 650억 달러(약 한화 95조5천500억 원) 한도의 외환 스와프(SWAP) 계약 연장 등도 검토 대상이다.
또한 내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추가 금리 인하 여부와 일본은행(BOJ, Bank of Japan)의 금리 인상 속도 등도 내년 환율 시장의 주요 변수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