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연안에서 파나마 국적 유조선 '센츄리스'를 나포하는 미군.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쟁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베네수엘라를 압박하는 갈등 사태는 쿠바 정권을 존망의 기로로 몰아넣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Wall Street Journal)은 21일(현지시간)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을 차단하기 위한 봉쇄 조치를 강화하면서 쿠바가 심각한 에너지 대란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쿠바의 에너지 시스템은 반미 이념을 공유하는 베네수엘라로부터 값싸게 공급받는 원유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하루 10만 배럴(bbl)에 달했던 베네수엘라산 원유 공급량은 현재 3만 배럴 수준으로 감소했음에도, 여전히 쿠바가 수입하는 원유의 40퍼센트(%)를 차지하는 핵심 물량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테러 단체'로 지정하고, 제재 대상 유조선의 출입 전면 봉쇄를 선언하여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현재 쿠바는 러시아와 멕시코로부터도 원유를 수입하고 있으나,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네수엘라의 원유 공급이 중단될 경우, 쿠바 경제가 사실상 붕괴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오고 있다.

2021년 쿠바의 반정부 시위대와 친정부 시위대의 충돌 모습.사진=연합뉴스


◆ 장기화된 정전과 물가 폭등... 국민 4분의 1 탈출

쿠바는 이미 하루 18시간 이상 정전이 이어지는 지역이 적지 않을 정도로 전력난이 심각하며, 이는 노후화된 발전 시설과 고질적인 연료 부족 때문이다.

만약 베네수엘라 원유 공급이 추가로 감소하면 전력 생산뿐만 아니라 교통, 생필품 유통 전반이 마비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텍사스주립대학교 호르헤 피뇽 연구원은 "베네수엘라 원유를 대체할 수단이 거의 없다"며 "이는 쿠바 경제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쿠바 경제는 2018년 이후 15퍼센트(%) 이상 위축되었고, 물가는 450퍼센트(%)나 급등했다.

통화 가치 폭락과 식량 부족은 쿠바를 탈출하는 국민의 행렬로 이어져, 최근 5년간 쿠바를 떠난 국민은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7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미국의 베네수엘라 유조선 압류를 '해적 행위'로 규정하고 트럼프 행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는데, 이는 미국의 봉쇄 조치가 쿠바에 미칠 영향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021년 수도 아바나를 비롯한 쿠바 곳곳에서 이례적으로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던 것도 잦은 정전과 생필품난에 지친 국민들의 분노가 표출된 결과였다.

아메리칸대학교 소속 경제학자 리카르도 토레스 페레스 연구원은 "베네수엘라 원유 공급이 더 줄어든다면 쿠바 입장에서 도저히 버틸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