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방 식단에 장기간 노출된 간세포(hepatocyte)는 줄기세포와 유사한 미성숙 상태로 되돌아가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돌연변이에 더욱 취약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는 간 질환의 진행과 간암 발생 위험 증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의공학·과학연구소(IMES)의 알렉스 샬렉 교수팀은 23일 과학 저널 '셀(Cell)'을 통해 고지방 먹이로 간 질환을 유발한 생쥐 모델과 간 질환 단계별 환자의 간세포 표본 연구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성숙한 간세포는 고지방 식단에 반응해 미성숙한 줄기세포 유사 상태로 되돌아간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세포 회귀 현상(cell reversion)은 고지방 식단으로 인한 스트레스 환경에서 세포가 살아남는 데는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암 발생 위험을 대폭 높인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고지방 식단에 노출된 간세포 변화
고지방 식단은 초기 단계에서 세포자멸사(apoptosis) 저항성을 높이고 세포 증식을 촉진하는 유전자 등 간세포가 스트레스 환경에서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는 유전자들의 활성화를 유도했으나 동시에 대사 효소와 분비 단백질 등 정상적인 간세포 기능에 필수적인 일부 유전자 발현은 점차 억제했다. 이런 변화는 간세포를 줄기세포와 같은 미성숙 상태로 되돌려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돌연변이 등에 취약하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Cell, Alex K. Shalek et al/연합뉴스
고지방 식단은 간에 염증과 지방 축적을 초래하여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MASH)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이는 간경화, 간부전, 최종적으로 간암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한다.
기존 연구들은 주로 고지방 식단이 간세포 사멸을 유도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지만, 살아남은 간세포의 장기적인 기능적, 분자적 변화나 암 위험 증가로 연결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다.
이에 샬렉 교수팀은 고지방 식단에 노출된 간세포 내부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특히 이러한 장기적인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어떤 유전자가 활성화되고 억제되는지를 규명하고자 했다.
연구팀은 생쥐에게 고지방 먹이를 급여하여 간 질환을 유발한 후, 주요 시점마다 간세포 단일세포 아르엔에이(RNA, Ribonucleic Acid) 시퀀싱을 수행했다.
이를 통해 간 염증 단계에서 조직 섬유화, 최종적으로 간암에 이르는 과정의 유전자 발현 변화를 정밀하게 추적했다.
연구 결과, 고지방 식단은 초기 단계에서 세포자멸사(apoptosis) 저항성을 높이고 세포 증식을 촉진하는 유전자 등, 간세포가 스트레스 환경에서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는 유전자들의 활성화를 유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대사 효소 및 분비 단백질 등 정상적인 간세포 기능에 필수적인 일부 유전자 발현은 점진적으로 억제되기 시작했다.
또한, 성숙한 간세포에서 주로 나타나는 유전자 발현 패턴은 감소하고, 발달단계나 줄기세포와 연관된 유전자 발현은 증가하는 세포 회귀 현상이 뚜렷하게 확인됐다.
이러한 변화로 고지방 먹이에 노출된 생쥐들은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간 질환이 진행되었고, 연구가 종료될 시점에는 대부분의 생쥐에서 간암이 발생했다.
연구팀은 간세포를 미성숙 상태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갑상샘호르몬 수용체와 정상적인 간에서는 활성화되지 않는 전사인자(SOX4) 등 특정 유전자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나아가 간 질환 환자들로부터 질환 단계별로 채취한 조직 표본을 분석한 결과, 고지방 먹이에 노출된 생쥐에서 확인된 유전자 발현 패턴 변화가 사람 간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남을 확인했다.
샬렉 교수는 "세포는 고지방 식단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생존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행동하지만, 그 대가로 종양 형성 위험은 커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연구에서 발견된 새로운 분자 표적들이 환자 치료를 개선하는 새로운 접근법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고지방 식단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변화를 정상 식단이나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 수용체 작용제(GLP-1RA, Glucagon-like peptide-1 receptor agonist) 같은 비만약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지 추가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출처: Cell, Alex K. Shalek et al., 'Hepatic adaptation to chronic metabolic stress primes tumorigenes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