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앞에서 우는 어린이들, '1.4 후퇴'의 비극.사진=연합뉴스
■ 이재명 대통령은 중공군 참전에 의한 1.4 후퇴를 잊었던가ㅡ목메어 부르던 "굳세어라 금순아" "1.4이후 나홀로 왔다."란 피맺힌 노래에 심금이 울리지 않던가?
이재명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의 초청으로 중국을 국빈 방문해 베이징에 도착한 날은 며칠 전인 1월 4일이다.
필자는 이번 3박 4일간의 중국 방문이, 시진핑 주석이 연초부터 이재명 대통령을 ‘특별한 손님’으로 초청하며 한국을 미국보다 먼저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적 의도와,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과 같은 외교적 고립을 피하기 위해 중국과의 밀착을 강화하려는 이재명 대통령의 계산이 맞물린 결과라고 판단한다.
그런데 1월 4일은 역사적으로 어떤 날인가.
이날은 꿈에도 잊지 못할 1·4 후퇴의 날이다.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6·25 전쟁에 참전하여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 전선에서 패퇴해 최남단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나는 와중에 또다시 서울의 공산화를 피해, 수도 서울의 모든 시민이 서울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른 비극의 날이 1·4 후퇴의 날이다.
그 당시 상황을 돌이켜 보면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탱크를 몰고 38선을 넘어 남침한 후 불과 3일 만인 6월 28일에 서울이 함락되었고, 7월 5일 미군 지상군 선발대가 오산에 파견되어 북한군과 죽미령 전투를 했으나 패배했다.
이어 7월 7일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결의로 유엔군 참전이 개시되어 7월 8일부터 미군을 위시한 영국, 호주 등 16개국의 전투 병력과 의료지원 등을 합하면 총 22개국의 유엔군이 참전하여 전투를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아군의 지속적인 열세로 패배를 거듭하여 마침내 8월에는 북한군이 낙동강 저지선인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까지 남하하여 겨우 국군과 유엔군이 대구 이남과 부산을 지켜낼 수 있었다. 나머지 북쪽 한반도 전체가 북한군 수중에 점령당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맥아더 장군의 용단으로 결행한 9·15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9·28에는 서울이 다시 수복되었고 전세는 역전되어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이 파죽지세로 전개되어 마침내 압록강과 두만강을 바라보는 최북단에 이르게 되었다.
◆ 중공군 참전과 혹한의 전투
그런데 10월에 북한 김일성의 요청으로 중공군이 참전하게 되었는데 중국은 그전에 이미 ‘인민지원군’ 명칭으로 비밀리에 병력 약 20만 명을 압록강을 넘어 투입해 놓은 상태였다.
모택동은 한반도 전체가 미국 주도의 반공(反共) 질서 아래 편입될 경우 중국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해 이미 참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로써 유엔군과 국군이 중공군의 대규모 참전을 인지하지 못한 사이 중공군은 야간을 이용해 산악 지형을 통해 침투했는데 그들은 병력 우세에 의존하여 한국군과 미군을 분리시켜 공격하는 ‘인해전술’을 구사하여 전세는 역전되었고 유엔군과 국군은 큰 피해를 입으며 38선 이남으로 후퇴하게 되었으며 전쟁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고 말았다.
북한군과 중공군 연합군대가 10월부터 12월까지 국군과 유엔군 연합군대가 압록강 이남에서 극한의 추위와 싸우면서 벌인 대표적인 전투는 장진호 전투와 청천강 전투이다.
이들 전투는 적과 아군 간의 전투라기보다 차라리 양측 모두가 혹독한 겨울 추위로부터 얼어 죽지 않으려는 ‘생존을 위한 전투’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때 얼마나 추웠든지 모든 것이 다 얼어붙어 있었다.
무기도 식량도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병사들도 선 채로 동사하기까지 했다.
양측이 다 마찬가지였다.
장진호 전투 회고담에는 이런 일화도 있다.
“낮에는 영하 20도 밤에는 영하 40도의 지옥 같은 추위에 미 해병 1사단 1만5천 명이 중공군 12만 명에 포위되었다.
이들 미군은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잠든 상태에서 얼어서 깨어나지 못하고 보초도 선 상태로 동사를 하고 총을 쏘려 해도 노리쇠가 얼어붙어 작동하지 않았으며 박격포탄은 얼음덩어리가 되어 발사되지 않았다.
야전 병원의 부상자들은 모르핀 주사약이 얼어 있어 주사기가 들어가지 않았으며 전투 식량은 돌덩어리가 되어 이빨이 부러지고 얼음 상태로 먹은 자는 설사병에 걸렸으며 손가락 발가락이 얼어서 떨어져 나갔다.
또 중공군 4천 명이 총알 한 방 안 맞고 동사했으며 총을 겨눈 채 동사한 상태로 발견되고 심지어 수류탄을 든 채로 얼어 죽어 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미군 병사가 후방에 무전을 쳐 ‘Tootsie Rolls를 보내달라’고 했다. 이 투시롤스는 박격포탄을 뜻하는 은어였다.
이 무전을 받은 후방 부대에서는 헬리콥터로 엄청난 양의 초콜릿 사탕을 투하해 줬다. 혹한의 전투 경험이 없어 투시롤스라고 초콜릿 사탕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박격포탄이 아닌 사탕을 받고 그들은 처음엔 절망했으나 이 사탕이 훌륭한 열량원이 되었다.
이것이 꽁꽁 언 전투식량을 대신하여 병사들 목숨을 연명시켜 주었다. 먹어서 열을 올려주기도 했거니와 라디에이터 수리에도 쓰였다.
이런 17일간의 장진호 전투에 미 해병 1만5천 명이 투입되어 3천 명이 전사하고 7천 명이 동상으로 전투력을 상실했다.
이 중 생존자들은 겨우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12·24 흥남부두에서 출항한 메러디스 빅토리의 기적 — 피난민 1만4천 명이 60명 정원에 승선하여 1만4천5명이 거제도로 무사 탈출한 기적이 이때 있었음)
중공군의 3차에 걸친 공세로 인해 결국 국군과 유엔군은 후퇴를 거듭하여 이듬해 1951년 1월 4일에 서울을 다시 공산군에게 빼앗기고 다 이긴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고 남하하여 수도를 부산으로 옮겨 33개월간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때까지 전쟁을 치르게 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6·25 전쟁 희생자 수는 남북한 군인, 유엔군, 민간인을 포함하여 총 4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며 국방부 집계에 따르면 한국군 피해자는 약 62만 명(전사 13.8만, 부상 45만 등)이고 남한 민간인은 약 100만 명, 북한 및 중공군 사상자는 8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며 유엔군 희생자는 약 15만 명(사망 3만7천902명, 부상 10만3천460명 등)이다.
서울역에서 흘러나오는 이재명 대통령 상하이 현지 간담회 중계
7일 서울역 대합실 화면에서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의 상하이 현지 기자간담회 중계방송이 흘러나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대통령의 역사 인식과 체제 수호의 교훈
이재명은 들어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대변하는 자리이다.
그 자리에서는 1950년 6·25 전쟁 개시일, 9·15 인천 상륙작전, 9·28 서울 수복일, 중공군 개입으로 인한 1·4 후퇴로 서울 함락,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의 일자 등 날짜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대는 시진핑의 초청으로 중국에 국빈 방문을 한 그날 베이징에서 1951년 1·4 후퇴 때의 국군과 유엔군의 피눈물이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던가?
누구 때문에 어느 나라 때문에 우리 피난민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굳세어라 금순아” “1·4 이후 나홀로 왔다” 하며 절규했던가를 한 번쯤 반추했어야 했다.
그때 그 불쌍한 피난민들의 처절한 광경과 울부짖는 보따리 행렬이 다른 누구도 아닌 중공군에 쫓긴 우리 백성이 아니었던가!
베이징에서 분에 넘치는 국빈 대접을 받으니 지나간 6·25 전쟁사는 하나의 낭만적 추억이요 잊혀져야 할 과거에 불과하더란 말인가?
그러길래 시진핑더러 아니 우리 국민들에게 “중국과 한국은 불필요하게 서로를 자극하거나 배척하거나 또 대립할 필요가 없다”며 “있는 환경을 잘 활용하면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는데 왜 불필요하게 근거 없는 사안들을 만들어서 갈등을 촉발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던가?
우리 서울이 북한의 남침으로 3일 만에 함락되었다가 미국의 맥아더 장군에 의한 9·15 인천 상륙작전으로 9·28에 기사회생한 감격과 중공군에 의해 또다시 서울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여 서울을 버리고 남으로 남으로 피난길에 올랐을 때의 국민 심정의 참담함과 피난 길에 가족은 이산되고 천신만고 목숨을 건 피난 행렬이 부산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3월 15일 다시 서울을 재탈환하기까지의 그 참담함, 생사가 오간 아슬아슬한 긴장 상태를 짐작이나 하고 그런 소리를 하는가?
“불필요하게 반미 친중 행각을 벌이는 자는 이재명 바로 당신이다.
중공군에 의해 패망 일보 직전에 이른 대한민국이 오늘날 이토록 번영을 누리는 선진국이 된 것은 미국 덕분이고 참전 유엔군 덕분인 것을 꿈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원수인 중공은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을 집어삼키려 하고 미국은 혈맹으로서 대한민국을 번영케 하려는 은인임을 알고 친미 반중 노선을 확고히 해야만 할 것이다.”
(영상 제공= 유튜브 '복원왕 Restoration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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