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국기 배경으로 보이는 트럼프 미니어처 그림자.사진=연합뉴스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13일째 강경 진압에도 불구하고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9일(현지시간) 외신들을 종합하면, 애초 경제난에서 촉발된 이번 시위는 국제정세와 뒤얽히며 이란 정권의 존속을 위협하는 사태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정권의 주요 지지층이었던 상인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2022년 히잡 시위보다 광범위하게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시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며 중대성을 더하고 있다.

이번 대규모 시위는 극심한 경제난이 직접적인 방아쇠 역할을 했다.

지난달 이란의 물가는 전년 대비 24.4퍼센트(%) 치솟았고, 이란 리얄화 가치가 사상 최저로 폭락하면서 민심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식용유와 닭고기 가격이 하루 만에 급등하고 일부 품목은 아예 상점에서 사라지는 등 주민들의 생활고가 극에 달했다.

여기에 중앙은행이 일부 수입업자에게만 낮은 미 달러 환율을 적용하던 정책을 폐지하고, 오는 새해 3월 세금 인상이 예고되면서 국민적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이에 지난달 28일 이란 시장(바자르) 상인들이 점포 문을 닫고 거리로 뛰쳐나왔고, 이들의 움직임은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빠르게 번졌다.

뉴욕대 중동·이슬람학 아랭 케셔바르지언 부교수는 CNN 뉴스에 "이란 역사를 살펴보면 상인들은 100년 넘게 주요 정치적 움직임의 핵심층이었다"며 "상인들은 이슬람 공화국에 가장 충성스러운 지지층으로 여겨졌다"고 분석하며, 정권 지지층의 이탈이 이번 시위의 중대성을 더한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 디나 에스판디아리 중동 분야 담당은 "이란 국민이 좌절감과 피로감에 빠져있다는 점에서 이번 시위는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테헤란.사진=연합뉴스


이란 당국은 이번 시위가 과거보다 더 광범위하게 퍼짐에 따라 위협을 느낀 듯 강경 대응으로 맞서고 있다.

8일(현지시간) 이란 당국은 전국 인터넷과 국제전화 등 통신을 차단하고 군경을 동원하여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고 있다.

비정부기구(NGO, Non-Governmental Organization) 이란인권(IHR, Iran Human Rights)에 따르면 테헤란, 마슈하드, 야즈드 등 이란 내 최소 100개 도시에서 시위가 발생했으며, 쿠르드계가 주류인 이라크 접경 지역으로까지 시위가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망자도 속출하고 있다.

미국 기반 인권운동가통신(HRANA, Human Rights Activists News Agency)은 이날까지 시민과 군경을 합쳐 모두 62명이 숨졌다고 집계했으며, 이란인권은 어린이 8명을 포함해 시위대 45명이 사망했고, 수백 명이 다쳤으며 2천여 명이 구금된 상태라고 전했다.

앞서 5일 이란 반관영 언론 파르스 통신은 이번 소요로 경찰관 250명, 보안군 대원 45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이란 권력의 정점에 있는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국영 아이알아이비(IRIB) 방송을 통해 "일부 폭도들이 거리를 망치며 다른 나라 대통령을 기쁘게 하고 있다"며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강경 대응을 천명했다.

이란 혁명수비군 또한 성명을 내고 "이 같은 (시위)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자신들에게 보복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다만, 이란 정부는 국민 대다수에게 매달 7달러(약 한화 1만220원)의 생활비 지원금을 제공해 생필품 구입에 쓸 수 있도록 하는 유화책도 발표했으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방법으로는 경제난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모나 야코비언 중동 분야 선임 자문위원은 시비에스(CBS)뉴스에 "2022년 시위는 히잡에 대한 불만만 해결하면 됐지만, 경제 문제는 (현 정권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이 같은 국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입 여부가 중대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이란 핵시설을 직접 타격하는 등 이란의 역내 숙적인 이스라엘을 돕기 위해 힘을 과시해왔다.

이란의 신정체제의 붕괴는 이스라엘의 숙원이며,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이달 초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하는 작전에 성공하며 군사적 해결에 자부심을 내비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 이란 정부를 향해 개입을 시사하며 경고성 발언을 내놨다.

그는 "이란이 과거처럼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한다면 우리가 개입할 것"이라며 군사 공격을 명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지상군 투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가장 아픈 곳을 매우 강력하게 타격하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란 정권이 1979년 신정일치 체제 수립 이래 최대 위기 가운데 하나에 봉착하자 반체제 인사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특히 미국에 망명 중인 레자 팔레비 왕세자가 주목받고 있다.

팔레비 왕세자는 지난 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Social Networking Service) 엑스(X, 구 트위터)에 영상을 올리고 "긴급하고 즉각적인 관심과 지원, 조치를 촉구한다"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이란 국민을 돕기 위해 개입할 준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팔레비 왕세자와의 만남에 대해서는 "현시점에서 그를 만나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다"며 "모든 사람이 무대에 나서도록 하고 누가 부상하는지 보자"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