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의 생전 모습.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은 경북외국어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었다. (사진=더프리덤타임지)
(22.06.27) 새벽 1시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너무 놀라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전공의가 하는 말이 상태가 나빠져 혼수상태로 만들어서 치료해야 한다고 교수님과 상담하러 오라고 한다. 얼른 짐을 챙겨 병원으로 와 주치의와 상담했다. 상태가 더 나빠져 경기를 잡기 위해 일부러 혼수상태로 만들고 약을 최대치로 써서 경기부터 잡고 나머지 치료를 병행한다고 한다. 약을 너무 많이 쓰다 보니 간, 신장 등 장기들이 걱정이긴 한데 아직 어리니 잘 버텨 줄 거라 믿는단다. 하지만 예후는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주치의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 가슴에 비수로 날아와 꽂힌다. 일단 살려야 하니 무조건 받아들이고 마음 단단히 먹자고 스스로 다짐한다. 병원을 떠나 편한 곳에서 씻고 자는걸 슬비가 질투라도 했는지 떠나자마자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오니 이제 병원을 벗어나지 않기로 했다. 아침이 지나고 오후가 되어갈 무렵 신경과 주치의가 배정되어 상담했다. 거의 들은 대로였고 한 가지 다른 건 자가면역 뇌염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고 했다. 자가면역 뇌염은 서울대에서만 확인이 가능하고 택배로 보내 2주가 걸린다고 했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고 선제적으로 면역치료를 시작한다고 한다. 표적항암제인 리툭시맙을 투여하고 스테로이드와 면역글로불린으로 면역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상담을 기다리며 미국에 있는 서울대 출신 형수가 떠올라 연락을 했다. 혹시 서울대병원에 자리를 만들 수 있겠냐고? 응급실 말고 중환자실로 바로 갈 수 있도록 만들어도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형수는 친한 후배인 서울대 의사와 통화를 하고 나서 지금은 옮기는 게 위험하기도 하고 받아주지도 않는다고 한다. 경대병원도 실력이 좋고 믿어보라고 했단다.
여기 의사들을 못 믿는 게 아니다. 지금 상황에선 슬비가 나을 수 있다면 무엇인들 못 할까? 0.1만큼이라도 나은 게 있다면 당연히 그리로 갈 것이다. 처음부터 서울로 가지 않았음을 지금 후회한들 무엇 할까? 최선을 다한다고? 무엇이 최선인지를 모르는 상황이다. 순간순간 판단으로 여기까지 잘 와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구미에서 포항으로 옮긴 것도 잘한 판단이고 포항서 대구로 온 것도 잘한 판단이다. 포항에서 처방한 항생제는 여기서도 쓰고 있으니 잘못된 건 없다.
그렇게 주치의가 배정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또 힘든 이야기를 듣게 된다. 경련이 심해져 MRI를 찍으니 뇌가 부었다고 한다. 사진을 보니 뇌 주름이 거의 없다. 특히나 기억 쪽을 담당하는 부위에 손상이 생겼고 장애가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면회를 했다. 인공호흡기로 숨을 쉬며 누워있는 슬비를 보자마자 오열했다. 그렇게 울어본 기억이 없다. 나는 눈물이 별로 없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에도 몇 번씩 운다. 집중치료실에 누워있는 자식을 보면서 어떻게 침착할 수 있을까?
다음 날(22.06.28) 아침 화장실 가는 전공의에게 물어보니 밤새 경련은 없었고 안정된 상태이긴 하나 혈압이 낮다고 한다. 경련 약을 조금만 줄여도 경련을 하니 약을 줄이지 못한단다. 약을 오래 쓰면 좋을 게 없다. 슬비가 깨어나 정상적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지만, 아니라도 어떤가?
오후에 주치의를 만나니 혈압이 조금 올라왔다고 한다. 신체기능도 아직은 괜찮단다. ‘그래 하나 정도는 나아져야지’ 우리 슬비 잘 버텨주고 있다. 엄마 아빠도 슬비 곁에 있기 위해 병원 의자나 소파에서 쪽잠을 자고 화장실에서 세수한단다. 혹시 나중에 병원비가 부족할까 봐 김밥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단다. 이까짓게 무슨 어려움이겠냐만 우리 슬비가 일어설 때까지는 조금의 부족함도 없어야 하기에 그런 것이란다. 아빠는 이것조차 호의호식인 것 같아 슬비에게 미안하지만, 엄마 아빠가 버텨야 우리 슬비가 일어날 테니까 이해해주렴.
다음날(22.06.29) 약을 조금 줄이니 경련이 심해져 약을 줄이지 못하고 있단다. 주삿바늘을 꽂을 데가 없어 중심 정맥을 잡은지 하루 만에 또 카테터를 삽입해야 한다고 한다. 저 어린것의 몸에 무슨 주삿바늘을 그리도 꽂는지, 혈압이 돌아오고 있고 소변도 잘 나오고 있다고 한다. 해열제 없이 열도 안 나고 오후에 카테터 시술에도 경기가 없었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다.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의 생전 모습.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과 아버지인 본지 이상훈 기자(오른쪽)는 부녀지간이 아닌 친구 같은 사이였다. (사진=더프리덤타임즈)
다음날(22.06.30)이 되니 또 반복되는 상태와 일상이다. 혈압이 또 떨어졌다고 하고 경련약을 줄일 수가 없어 CT 촬영을 또 미룬다고 한다. CT를 찍기 위해선 잠시 약을 끊어야 하는데 무리하지 말고 더 안정시켜 찍겠다고 한다. 문제는 슬비가 스스로 호흡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고 하지만 걱정이 안 될 수가 있을까? 일단 무조건 긍정적인 생각만 해야 한다. 현재 약을 너무 많이 쓰고 있어 걱정이다. 저녁 무렵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정말 기쁜 소식이다.
문득 힘들다는 생각이 들려다가 슬비를 생각하자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힘이 들진 않는다. 다만 너무 걱정되고 겁이 난다. 우리의 슬비가 너무 힘들어하는 것이 겁이 난다. 크면서 걱정할 만큼 아파본 적이 없던 우리 슬비가 갑자기 저렇게 중환자실에서 병마와 싸우게 될 줄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단순한 감기만 걸려도 안쓰럽고 안타까울 정도였는데 지금은 얼마나 힘들까?
사랑하는 내 새끼 힘내라. 이 힘들고 어려운 병마와 꿋꿋이 싸워 이겨내 엄마와 아빠에게 자랑거리 하나를 더해주길 바란다. 혼자 외롭게 싸우느라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하면 숨을 쉬기도 힘들만큼 가슴이 아프지만, 엄마 아빠가 할 수 있는 건 옆에서 지켜보는 것밖에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불쌍한 내 새끼...얼마나 힘들꼬...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밖에는 달리 도울 방법이 없단다.
아픈 곳 없이 튼튼하게 자라주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겸손하게 생각했는데 우리 강아지가 이렇게 힘든 싸움을 하게 될지 정말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생각하다가도 누워있는 우리 강아지를 생각하면 왜 우리 슬비에게 이런 가혹한 일이 생겼을까? 하늘이 원망스럽고 너무나도 분통이 터진단다.
우리 슬비의 고통을 아빠가 나누어 가질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건만, 어서 기운 차리고 일어나길 손꼽아 기다릴게...언제까지든 엄마 아빠는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 우리 슬비도 절대 포기해선 안 된다. 알겠지? 슬비 곁에는 항상 엄마아빠가 있으니 외로워하지도 말고 무서워하지도 말아. 엄마 아빠가 언제든 지켜 줄 테니까...아빠가 이글을 계속 쓸 수 있도록 도와줘, 그리고 깨어나서 이 글을 읽고 울강아지, 엄마, 아빠 셋이 지금의 현실을 추억하길 바랄게. 벌써부터 그날이 기다려지는구나.
그리고 오늘은 학교 친구들이 슬비에게 쓴 쪽지들을 담임선생님께서 사진 찍어 보내주셨어. 친구들은 우리 슬비가 어디가 아픈지 아직 모른데. 지금은 시험 기간이니까 선생님께서 천천히 말씀해주신다네. 엄마랑 아빠는 그 쪽지들을 보면서 또 울었거든. 우리 슬비가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말이야.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아빠는 우리 슬비가 너무너무 걱정이 돼. 퉁퉁 부은 손을 보고도 손을 잡아주기는커녕 손끝 하나 대지 못하는데 우리 슬비를 어떻게 위로해주고 힘내란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매 순간이 안타깝고 미안할 뿐이다.
내일은 가까운 곳에 방을 알아보려 해. 아빠는 괜찮은데 한 달간 병원에서 쪼그려 잠자고 씻지도 못할 엄마를 생각해서 원룸을 구하기로 했어. 편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먹고, 자고, 씻고, 빨래하고 하는 비용을 생각해보니 원룸을 구하는 게 더 효율적일 거란 생각이야. 슬비가 보고 싶으면 맨발로 뛰어올 수 있는 거리니까 섭섭해하지 말고 이해해주렴. 우리 슬비는 쿨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