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앞에 상징석.사진=더프리덤타임즈

◆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 불리는 국회, 과연 그러한가

대한민국 국회를 들어서면 잔디광장 해태상 옆에 마치 고인돌을 연상시키는 큰 바윗돌이 가로 누워있다. 거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 대한민국 국회”라는 글귀가 훈민정음 해례본체로 새겨져 있다.

지난 7월 17일 제77회 제헌절을 맞아 우원식 국회의장을 비롯해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모여 제막식을 가졌던 ‘국회 상징석’이다.

아마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되었던 지난해 12월 3일 그날 밤 국회가 나서 여야 표결로 비상계엄을 해제시킨 것을 기념하려는 것 같은데, 하지만 그 곳을 지나칠 때마다 ‘과연 국회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가 맞는가’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음도 부인할 수 없다.

민주주의 기본 정신인 다른 이와 더불어 함께 사는 것, 곧 반대 진영의 정당과도 공존공생하는 정치는 하지 못하고 다수당의 횡포, 합의 없이 자행되는 날치기 단독 통과 등 입법 독재가 다반사인 대한민국 국회의 모습을 뉴스로 접하는 국민들에게 국회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이긴커녕 오히려 ‘민주주의 파괴 주범’은 아닌가 싶어지는 것이다.

필리버스터 들어간 최형두 의원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한국교육방송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EBS법)이 상정되자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이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에 나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실종된 합의제 민주주의와 제왕적 국회의 탄생

야당이 ‘희대의 악법 3종 세트’라 부르는 이른바 방송3법·노란봉투법·상법의 본회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필리버스터(filibuster)까지 진행하며 필사적으로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통령의 민주당 정권이 8월 국회에서 190석이란 거대 여당 의석을 앞세워 일사천리로 처리하고 있는 정부 여당 모습에서 ‘합의제 민주주의’는 여전히 실종 상태다.

심지어 지난 윤석열 정부 때, 여소야대 22대 국회에서는 거대 야당 민주당이 총리를 비롯해 30명 가까운 국무위원 주요 공직자를 탄핵하는 헌정사상 전무후무한 29번의 ‘줄탄핵’으로 행정부를 마비시키고 정부가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만들어, 이른바 ‘87체제’에서 흔히 통칭하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무색케 만들면서 ‘제왕적 국회’라는 신조어까지 낳기도 했었다.

국회의사당 앞 해태상.사진=연합뉴스


◆ 법의 수호자 해태와 국회의원의 책임

국회를 입법부(立法府, legislature)라 부른다.

법이라는 단어는 중국 한나라 양부가 지은 『이물지』에 따르면 해태에서 나왔다.

거기 언급되길 “동북 지방의 황량한 땅에 어떤 짐승이 사는데 이름을 ‘해태’라 한다. 뿔이 하나이고 성품이 충직하다.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자를 들이받고, 사람들이 서로 따지는 것을 들으면 옳지 못한 자를 문다.”고 하였다.

원래는 ‘해태가 물처럼 고요하게 판단해서 틀린 상대를 받아버린다는 의미’인 고자(古字) 灋였지만 너무 복잡해서 치(廌)가 빠져 지금의 법(法)자가 되었다고 한다.

법이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동물답게, 법을 관장하는 우리나라 국회, 경찰청, 대법원, 대검찰청 등에는 빠짐없이 해태상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세간에서는 그처럼 법을 관장하는 곳마다 해태상을 세워놓았지만 눈이 어두운 것인지 부정과 탈법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오히려 눈이 나쁜 사람을 ‘해태 눈깔’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입법부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아쉬운 마음이 담겨져 있는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국회.사진=연합뉴스


◆ 100년 뒤 타임캡슐과 민주주의 붕괴의 징후

그날 제막식에서 국회는 상징석 아래에 국회 입법·정책 보고서, 국회의원 배지와 단체 사진, 본회의장 의사봉, 독도 관련 간행물, 한국·세계 지도, 지면 신문, 국회 수첩·다이어리, 후배에게 보내는 메시지 등 2025년 대한민국 시대상을 담은 타임캡슐을 묻었고, 100년 뒤에 개봉된다고 한다.

100년 뒤 타임캡슐을 개봉했을 때 우리의 후손들은, 적대적 진영 정치 그 늪에 사회 전체 매몰되어 헤어 나오지 못하고 대립과 갈등으로 날을 지새우고 있는 2025년 대한민국의 국회를 비록한 우리 사회의 이런 목불인견의 모습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에서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Robert Levitsky)와 대니얼 지블랫(Daniel Ziblatt)은 “과거에는 쿠데타나 무력에 의해 민주주의가 무너졌다면, 현대에는 합법적인 제도를 활용해 서서히 민주주의가 약화된다”면서 민주주의 붕괴의 4가지 기준으로 ▲선거 결과 불복 같은 민주적 규범에 대한 거부, ▲야당을 적으로 간주하는 등 정적의 정당성 부정, ▲정치적 폭력의 용인 또는 조장, ▲비판 언론의 자유 제한 시도를 꼽았다. 특히 민주주의는 상대를 합법적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관용과 권한이 있어도 남용하지 않는 자제 같은 비공식적 규범에 의해 지켜진다고 했다. 여기에 우리의 국회는 부합되고 있는가.

제막식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은 “헌법이라는 방패로 비상계엄을 막았다. 국회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문구를 스스로 새길 수 있게 되기까지 참으로 험난한 헌정사가 있었다”고 자평하면서 국회의 그간의 위업들을 늘어놓았었다.

하지만 국회 밖에서 국회 안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상징석을 국회 안마당에만 세울 것이 아니라, 300명 국회의원 개개인 마음속에 세워 ‘합의제 민주주의’가 국회에서 명실상부하게 실천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