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세주르네 EU 수석 부집행위원장.사진=연합뉴스

유럽연합(EU)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사실상 '굴복'했다는 비판에 대해, "힘의 균형이 유럽인들에게 유리하지 않았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스테판 세주르네 EU 번영·산업전략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26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며,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협상 노력이 최선이었음을 강조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정부의 강경한 무역 정책이 주효했음을 시사하며, 복잡해지는 국제 무역 질서 속에서 EU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세주르네 부집행위원장은 "집행위에 부여된 임무는 매우 명확했다. 갈등의 확대를 피하고 '노딜'을 막는 것이었다"며 "위원장은 이를 철저히 이행했다"고 밝혔다.

또한 "위원장은 회원국들의 지시뿐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와의 외교적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보복 조처를 하지 말아 달라는 경제계 지도자들의 간청까지 고려했다"며 이번 협상 결과를 뒤늦게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EU가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기조에 맞서기보다 실질적인 경제적 피해를 막는 데 우선순위를 두었음을 보여준다.

세주르네 부집행위원장은 국제 무역이 지정학적 쟁점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인정하며,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지적했듯, 상업적 힘은 더 이상 지정학적 힘을 대체하지 못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EU의 약점은 구조 자체에 있다"며, 특히 "트럼프는 무역, 국방, 캐나다·그린란드 영토 등 서로 다른 문제들을 연결했는데, 이 모든 것이 EU의 관할권에 있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광범위한 협상 전략 앞에서 EU의 통합적 대응이 어려웠음을 내비쳤다.

이러한 제약 조건을 고려하면 이번 협정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영국이나 일본 등 다른 국가가 얻어낸 것보다는 훨씬 낫다"며 "특히 모든 분야에 15%라는 포괄적 한도를 확보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유럽의 주요 수출품인 와인·증류주가 무관세 항목에 포함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최대한 많은 면제 품목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추가 면제를 얻기 위해 계속 협상해야 한다"고 밝혀 향후에도 난관이 예상됨을 시사했다.

EU는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MERCOSUR)과의 무역 합의를 완성하는 등 세계 각국과 무역 관계를 다각화하여 유럽 산업의 성장을 촉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세주르네 부집행위원장의 모국인 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농업국가는 메르코수르와의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 체결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내부적 균열의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세주르네 부집행위원장은 "메르코수르와의 무역 협정은 일부 산업 분야에 해답이 될 수 있다"면서도 "프랑스 농민들의 우려를 해결해야 한다"며 프랑스가 유럽 차원에서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제안하고 있음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