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다음 달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사실상 확정됐다.

무역과 안보 등 전방위적인 전략 경쟁을 펼치고 있는 두 정상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대면하는 장소가 경주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APEC 회원국들을 상대로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18일 외교가에 따르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APEC 정상회의 참석이 아직 공식 발표되지는 않았으나, 이미 사실상 결정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조셉 윤 주한미국대사대리는 전날 연설을 통해 한미 양국 대통령이 "경주 APEC에서 만나실 것"이라고 언급하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참석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 또한 전날 중국과의 외교장관 회담 이후 시 주석의 APEC 계기 방한에 대해 "확실한 것으로 느꼈다"고 밝혀, 중국 측이 시 주석의 한국 방문을 사실상 약속했음을 시사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 주석이 다음 달 31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경주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다면,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이후 13년 만에 미중 정상이 나란히 한국을 방문하는 사례가 된다.

◆ 세계 통상 질서 놓고 미중 간 치열한 입장 대결 예고

두 정상은 APEC이라는 다자 경제 협의체를 세계 통상 질서에 대한 자국의 입장을 설파하는 중요한 기회로 삼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고율의 상호관세를 각국에 부과하는 등 세계 무역 환경을 뒤흔들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과거의 통상 질서가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며 각국이 이러한 정책에 협조할 것을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미국의 이러한 조치를 강하게 비판하며 '자유로운 국제무역 질서'를 강조할 것으로 관측된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전날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중국과 한국은 모두 경제 글로벌화의 수혜자로서 국제 자유무역 체제를 수호해야 한다"며, "일방적 괴롭힘이 횡행하는 정세 속에 무역 보호주의에 공동으로 반대해야 한다"고 밝혀, 자국 중심주의를 앞세우는 미국에 반대해 한국과 중국이 협력해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국립경주박물관에 들어선 APEC 만찬장
작업자들이 지난 15일 경북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만찬장 공사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APEC 회원국, 복잡한 외교적 셈법에 고심

관심은 이러한 미중 양국의 대립 상황을 지켜볼 APEC 회원국들이 어떤 자세를 취할지에 쏠리고 있다.

APEC은 1989년 출범 당시 미국을 포함해 캐나다, 일본, 호주, 한국 등 미국의 주요 우방국들이 참여했으며, 중국은 1991년 뒤늦게 동참했다.

지리적으로도 미국과 인접한 태평양 연안 국가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미국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미국의 메시지에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 2기 행정부 하에서 열리는 첫 APEC 정상회의인 이번 회의에서는 이전과는 판이한 기류가 흐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등 무역 전쟁이 주로 중국을 겨냥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한국, 일본, 캐나다 등 미국의 우방국들에까지 피해가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의 가치이자 각국 번영의 토대였던 자유무역 질서를 미국의 경쟁국이 된 중국이 오히려 외치는 상황에서, APEC 회원국들은 복잡한 외교적 셈법을 따져가며 대외 메시지 조절에 고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자유무역을 외치기는 하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장 이전까지는 비관세 장벽을 쌓아 올린 것이 중국이었다"며 "중국의 메시지를 진정으로 믿는 국가는 많지 않으므로 미중이 각자 입장만 내세우다가 화합을 중시하는 APEC의 목표와는 멀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2025 경주 APEC 정상회의 (PG).사진=연합뉴스


◆ 경주에서의 미중 정상회담 성사 여부도 주요 관심사

APEC 정상회의 기간 중 경주에서 미중 양자 회담이 성사될지도 주요 관심사다.

현재 관세 및 무역 회담을 이어오고 있는 양측이 경주에서 정상 간 담판을 벌일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다만 중국 측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공식 초청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이 성사된다면 APEC 정상회의 전후가 될 수 있어 경주에서의 미중 정상회담 성사 여부에는 여전히 변수가 많은 상황이다.

국립외교원의 민정훈 교수는 "미중 모두 관계 관리에 관심이 많으므로 굳이 충돌할 이유는 없을 것"이라며 "한국은 의장국으로서 의제에 부합하는 합의문을 이끌어내는 한편, 미중 간의 갈등 수위를 낮춰 미중 정상회담을 조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