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내 '빅3'로 꼽히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가 2일(현지시간) 전날 열린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 화상회의에서 러시아 동결자산 활용 문제에 대한 국제 공조를 위해 미국과 일본의 동참을 강력히 촉구했다고 폴리티코 유럽판이 보도했다.
EU는 역내 동결된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을 우크라이나에 '배상금 대출' 형태로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법적 위험과 국제 금융시장 파장을 우려해 이 같은 국제적 공동 행동을 모색하고 있다.
러시아는 EU의 움직임을 "도둑질"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국제적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폴리티코 유럽판 보도에 따르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는 지난 1일 열린 G7 재무장관 화상회의에서 전 세계 주요 경제대국들이 러시아 동결자산 문제에 대해 공동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U는 역내에 동결된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 약 1천4백억 유로(약 231조 원)를 우크라이나에 '배상금 대출' 명목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시중은행이 고객 예금을 재투자하듯 러시아 자산 원금을 몰수하지 않으면서 법적 문제가 없는 선에서 활용하려는 구상이며, EU 27개국이 공동 보증을 서서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이다.
G7에 속하는 영국 또한 지난달 러시아 동결자산 활용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으며, 캐나다는 EU 구상에 공감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은 아직 불분명하며, 일본은 미국의 결정에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전날 회의 이후 발표된 G7 공동성명에는 러시아 동결자산 활용이 '옵션 중 하나'라고만 명시되어 있어,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시사했다.
성명은 "우크라이나의 자금 수요를 해결하고 러시아가 시간을 끌 수 없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선택지를 개발하고 있다"며 "우리의 관할권에 동결된 러시아 국유자산(RSA) 전체 가치를 공조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ECB)은 러시아 자산을 건드릴 경우 국제 금융시장에서 유로화의 신뢰도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일본 등 주요국들이 각국에 묶인 러시아 자산을 유사한 방식으로 활용하겠다고 선언하면 EU의 걱정도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 폴리티코의 분석이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가 동참을 요청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된다.
EU 내부적으로도 아직 합의는 도출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 대부분이 예치된 유로클리어 소재지인 벨기에는 몰수 개념이 아니더라도 원금에 손을 대는 전례 없는 조치가 초래할 법적 위험성을 특히 우려한다.
덴마크 코펜하겐을 방문 중인 바르트 더 베버르 벨기에 총리는 이날 "세상에 공짜 돈은 없다. 언제나 결과가 뒤따른다"며 "어제(1일) 동료들(다른 EU 정상들)에게 '뭔가 잘못되면 모두가 함께 책임을 진다'는 내용의 서명을 원한다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EU의 이러한 계획을 자산 몰수에 해당하며 '도둑질'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러시아는 정치적·경제적으로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수단과 능력이 있다"며 "우리 자산에 대한 공격 시 가혹한 대응이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파울라 핀호 EU 집행위 수석 대변인은 "자산 압류는 우리가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고 밝히며 러시아의 반발을 진화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그러나 '배상금 대출'이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우크라이나 지원에 활용하려는 EU의 움직임은 향후 국제 외교 및 법적 문제에 있어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