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목숨이다"
서예가 쌍산 김동욱씨가 한글날을 앞두고 지난 2022년 10월7일 경북 포항시 북구 영일대해수욕장에서 모래에 갈고리로 "세종대왕 훈민정음 한글이 목숨이다"란 문구를 쓰는 행위예술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오늘은 한글날이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훈민정음 책을 펴 들고 늠름하게 좌정하신 세종대왕께서 1446년 "나랏 말ㅆ.ㅁ이 중국과 달라 백성이 니를 것이 있어도 문자와 서로 사맛디 아니하여 내 이를 불쌍히 녀겨 새로 스물엷자를 맹가노니..."
( 훈민 정음 서문 : 나랏〮말〯ᄊᆞ미〮
中듀ᇰ國귁〮에〮달아〮
文문字ᄍᆞᆼ〮와〮로〮서르ᄉᆞᄆᆞᆺ디〮아니〮ᄒᆞᆯᄊᆡ〮
이〮런젼ᄎᆞ〮로〮어린〮百ᄇᆡᆨ〮姓셔ᇰ〮이〮니르고〮져〮호ᇙ〮배〮이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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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ᄅᆞᆯ〮為윙〮ᄒᆞ〮야〮어〯엿비〮너겨〮
새〮로〮스〮믈〮여듧〮字ᄍᆞᆼ〮ᄅᆞᆯ〮ᄆᆡᇰᄀᆞ〮노니〮
사〯ᄅᆞᆷ마〯다〮ᄒᆡ〯ᅇᅧ〮수〯ᄫᅵ〮니겨〮날〮로〮ᄡᅮ〮메〮便뼌安ᅙᅡᆫ킈〮ᄒᆞ고〮져〮ᄒᆞᇙᄯᆞᄅᆞ미〮니라〮.)
하시면서 훈민정음 곧 한글을 창제 반포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산 자는 말을 하며 살아가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죽은 자들의 시신이 묻힌 공동묘지는 그저 고요하기만 하다. 그러나 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인간 사회는 시끄럽기 그지없다.
말이 무성한 세상이다.
전쟁터에서는 총성에 섞인 아비규환의 아우성 소리, 시위 군중들의 시국 성토 절규 소리, 초상집의 곡소리, 잔치집의 풍악에 맞춰 부르는 흥겨운 노랫소리, 트로트 가요 열창, 전통 가곡의 창가(唱歌), 선거철마다 선거 유세를 하는 연사의 고함 소리, 이에 화답하는 청중들의 맞장구 소리, 그리고 학교 교실에서는 교사와 학생들의 책 읽는 소리, 집집마다 도란도란 대화 소리, 일터에서의 작업 소리, 요즘은 컴퓨터로 소리 없는 공간에서의 대화 등 이 모든 언어가 인간 세상을 유지시키는 공동체의 필수 구성요소다.
외국어.사진=유로스타트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 인류 문명 발전의 핵심 동력, 언어의 중요성
그런데 현재 세계에는 약 7천여 종류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중 대표적인 언어가 영어이고, 인구 수로 인해 중국어 사용자가 많으며 외교 언어로는 프랑스어가 주로 쓰인다.
남미에서는 스페인어가 대세이고, 유럽에서는 러시아어, 독일어, 이태리어, 폴란드어, 포르투갈어 등이 통용된다.
아시아 또한 각 나라별로 인구수에 따라 자국어가 사용되고 있다.
한국어는 어떠한가.
고대 한국어는 현재 한글과 유사한 '가림토' 문자였다.
ㄱ, ㄴ, ㄷ, ㄹ, ㅅ, ㅇ, ㅈ, ㅏ, ㅑ, ㅓ, ㅕ 등으로 구성된 소리글자인 가림토는 세계 모든 문자의 원형과 같이 보이기도 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이 가림토 발음으로 문자를 쓰고 의사소통을 해왔다. 그 뒤 삼국시대에 와서는 가림토 문자와 유사하나 한자어가 섞인 이두 문자를 사용했다. (신채호 저 《조선상고사》 참조)
그러던 것이 조선조 개국 당시에 이르러서는 사대부 계층 전부가 중국의 한자(漢字)를 문자로 사용하고, 민간에서는 이두어가 통용되니 문자와 언어가 서로 통하지 않아 생활의 불편이 극심했고, 한민족의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문화 발전이 거의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두뇌 회전은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일체의 과정이 하나의 언어로 통일되었을 때 극대화된다.
그렇지 않고 여러 개의 과정을 거치면 그만큼 두뇌 회전이 더디며 독창력이 저하되기 마련이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
'ㄱ'부터 차례로 자음의 발음을 설명한 대목이다.사진=국립한글박물관/연합뉴스
◆ 세종대왕의 위대한 유산, 한글 창제의 업적
이를 안타깝게 여긴 분이 바로 조선조 4대 국왕인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은 한글만 창제하신 것이 아니다. 국악 정가(正歌)인 전통 가곡의 악보 '정간보'도 창제하였고, 과학기구로는 앙부일구(해시계), 자격루(물시계), 혼천의(천문 관측기구), 측우기(강우량 측정기)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장영실 등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에게 명하여 대간의, 옥루, 간의 등 다양한 천문 기구와 자동 시계 장치를 개발하게 했다.
이처럼 두뇌 활동의 소산인 모든 창작과 발명은 다름 아닌 언어 활동의 소산이다. 즉, 언어가 두뇌를 가동시킨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세종대왕은 기존의 가림토 문자를 체계화하고 정렬하여 가장 과학적인 언어 체계인 훈민정음을 창제, 반포하셨다. 이를 익혀서 읽고 쓰고 말하게 함으로써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민족 문화의 창달, 유지,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셨다.
그 결과 한민족은 비약적인 문학과 예술의 창작은 물론, 과학 기술 분야에서의 눈부신 발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나중에 임진왜란 당시 맹위를 떨친 세계 최초의 기갑함선 거북선의 창제도 한글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다.
한글은 사대부와 일반 백성, 소위 양반 계급과 천민인 상놈 계층 간의 불화를 종식시키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양반이 쓰는 한문을 상놈들은 이해하지 못했기에 생긴 불평등이, 소위 '언문'이라고 지칭되던 한글을 서로 사용함으로써 평등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모두 일본어 사용을 강제 받았으나, 해방 후 자연스럽게 한국인이 모두 한글을 쓰게 되면서 평등 사회가 자연스럽게 도래되었다.
외국인 한국어 학습자들에게 전달할 한글자판 키보드 스티커.사진=반크/연합뉴스
◆ 지식정보화 넘어 AI 시대, 세계를 이끄는 한글의 미래 가치
농경 시대를 거쳐 산업 시대와 지식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여 컴퓨터 사용이 일상화됨으로써 한글은 더욱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었다.
컴퓨터 자판이 전부 한글로 구성되어 모든 국민이 한글을 전용하여 조작하기 쉽고 빠르다.
한글이라는 통일된 언어로 컴퓨터를 활용함으로써 생각과 동시에 언어로 변환되어 실시간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나 상호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세계는 지금 인간에 의한 지식 정보화 시대를 넘어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시대가 도래했다.
인공지능(AI)이 인공지능(AI)을 조작하여 인간도 인공지능(AI)의 명령에 복종하는 시스템이다. 이 인공지능(AI)의 성능은 그에 입력된 언어의 성능에 따라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한글이 입력된 인공지능(AI)이야말로 가장 우수하고, 그 한글 인공지능(AI) 시스템이 가장 강력한 공동체를 구성할 것이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보편화된 언어는 영어이지만, 머잖아 한글이 가장 보편화될 것이라고 필자는 단언한다.
세계인들은 케이팝(K-pop)과 케이컬처(K-culture)에 심취해 있다. 이에 한류는 세계 어디서든 전혀 어색하지 않은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인들은 스스로 한국어 학교를 찾고 한국 문화를 익히려고 애쓴다. 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관광지든 한국어가 통용되지 않는 곳이 없다.
이것을 볼 때 한글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언어 공동체를 조성케 하며 가장 멋진 문명의 이기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는 지금도 한쪽에는 영어 성경을 펴놓고, 또 한쪽에는 우리말 성경을 펴 놓고 자판을 두드린다.
그리고 세계 어느 곳을 여행하든지 주저 없이 한국어로 말한다. 혹여 그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여 적대감을 느끼면, 영어와 그들의 언어로 번역하여 설명해 준다.
암튼 한글은 하느님의 걸작품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