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만난 중일 정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31일 경주에서 열린 중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 자위대 개입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을 한 뒤 중국이 여행·유학·문화 분야를 겨냥한 실질적 보복 조치에 나서면서 중일 관계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양국 교류 단절과 추가 제재를 공공연히 위협하며 대치 국면 장기화를 예고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13일부터 단계적 반격을 시작했다.
쑨웨이둥 외교부 부부장은 13일 밤 가나스기 겐지 주중 일본 대사를 초치해 강력 항의했고, 다음 날인 14일 우장하오 주일 중국 대사가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을 직접 찾아 동일한 입장을 전달했다.
두 차례 항의 보도자료에는 이례적으로 “지시를 받들어”(奉示)라는 표현이 들어가 최고위층의 강경 의지를 드러냈다.
◆ 여행·유학·영화 동시 차단…즉각적 타격 가시화
15일 중국 외교부가 일본 여행 주의보를 발령한 직후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Air China), 중국동방항공, 중국남방항공 등 주요 항공사들은 일본행 항공편 무료 취소 정책을 전격 시행했다.
16일에는 교육부가 “최근 일본 내 중국인 대상 범죄가 늘고 있다”며 자국 학생들에게 일본 유학 계획 재검토를 권고했다.
17일에는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초화려! 작열하는 떡잎마을 댄서즈’, ‘일하는 세포’ 등 중국 개봉을 앞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들의 상영이 줄줄이 중단됐다.
일본 도쿄 긴자를 찾은 중국 단체 관광객들.사진=연합뉴스
◆ 관광업계 초토화…49만1천건 예약 취소·단체여행 전면 중단
주의보 발령 사흘 만에 중국발 일본행 항공권 49만1천건이 취소돼 전체 예약의 32퍼센트(%)가 사라졌다.
올해 1~9월 일본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700만명을 넘어섰던 점을 고려하면 충격 규모가 상당하다.
일본의 한 중국인 전문 여행사는 이달 하순부터 다음 달 초까지 예정됐던 기업 단체 여행 30건이 전면 취소됐고, 내년 12월 예정이던 9개 팀도 방문 계획을 철회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작년 5월 기준 일본에 12만3천명의 유학생을 보내고 있으며, 세계 2위 영화 시장으로서의 영향력도 막강하다.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사진=연합뉴스
◆ 관영매체, 교류 중단·경제 제재 공공연히 위협
중국중앙TV(CCTV, China Central Television) 계열 소셜미디어 ‘위위안탄톈’은 “대일본 제재와 정부 간 교류 중단”을 주요 반격 수단으로 거론했고, 신화통신 계열 ‘뉴탄친’은 18일 “다카이치가 발언을 철회하지 않으면 더 많은 조치가 준비돼 있다”고 경고했다.
2010년 센카쿠 분쟁 당시 시행했던 희토류 수출 통제, 2023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후 중단했던 일본산 수산물 수입 제한 재개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2012년 센카쿠 열도 국유화 당시 중국은 2년여에 걸친 전방위 압박으로 일본 관광객 25.1퍼센트(%), 무역액 10~11퍼센트(%) 감소를 초래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대만이 중국의 ‘핵심 이익 중 핵심’인 만큼 이번 갈등이 그때보다 더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중국은 한국 등 주변국을 끌어들이기 위한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으며, 일부 매체는 중국인 관광객이 일본 대신 한국을 선택하고 있다는 보도를 집중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중일 관계는 다카이치 총리가 발언을 철회하거나 양측이 실질적 대화 접점을 찾지 않는 한 장기 대치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