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서 열린 트럼프 반대 시위
지난 10월29일 오전 경북 경주시 동천동 구황교 인근에서 2025 APEC 반대 국제민중행동 조직위원회가 반(反) 트럼프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념화된 언론은 트럼프 현상을 분노, 극단, 포퓰리즘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피즘의 실체기득권화된 정당의 자기혁신 실패가 초래한 정치적 진공을 메우는 새로운 구조개혁 운동이었다.

미국 공화당은 오랜 기간 워싱턴 기득권 질서와의 타협, 보신적 중도화, 비전과 정책 방향의 상실로 인해 스스로의 정체성과 생존력을 갉아먹었다.

이 공백을 지적하고 대체한 것이 바로 트럼피즘이며, 이 운동의 본질은 낡은 조직, 타성적 리더십, 자기기만적 보신주의에 대한 급진적 내부혁신 압력이었다.

대한민국의 체제수호 애국세력 역시 동일한 딜레마 앞에 서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말하면서도 내부 분열과 기득권 구조에 안주한 세력이 적지 않다.

외부의 위협보다 내부의 무기력, 자기부정, 거리두기 정치가 더 위험한 이유는 정체성을 스스로 파괴하기 때문이다.

지난 2024년 7월13일(현지시간) 피격 후 주먹 올려들고 "싸워라"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트럼피즘은 대중의 폭발적 자기혁신 요구였다

트럼피즘이 공화당의 낡은 틀을 뒤흔든 것처럼, 대한민국의 체제수호세력 역시 분노와 증오의 대적전선을 명확히 하고 정당성을 회복하는 내부 개혁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트럼피즘의 핵심특권엘리트의 기득권적 합리성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드러낸 것이었다.

미국 중산층, 블루칼라 계층은 공화당 내부가 워싱턴의 특권엘리트, 언론, 로비 네트워크와 결탁하여 자신들의 삶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뚜렷한 이질감을 느꼈다.

트럼프는 바로 그 간극을 노렸다. 즉, 트럼피즘은 혼란과 분열이 아니라 정치가 존재이유를 잊고 방황할 때 대중의 폭발적 자기혁신 요구에 대한 응답이었다.

현재 한국 정치도 친중·친북 이념의 반국가 매국세력의 공세 앞에서 자유진영 일각은 눈치 보기, 중도 포장, 책임 회피, 보신적 거리두기를 반복하며 자기부정을 거듭해왔다.

이런 방식으로는 어떤 위기도 돌파할 수 없다.

지난 4월2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념 집회가 열린 미시간주 머컴 카운티 행사장에서 열성 지지자들이 트럼프 대통령 연설에 환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내부 혁신 실패가 정치세력을 무너뜨린다

정치세력은 외부 비판보다 내부 혁신 실패로 무너진다.

트럼피즘이 던진 첫 번째 교훈은 정당과 정치집단은 절박한 기반세력의 불만과 위기의식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두 번째 핵심은 트럼피즘이 비록 거친 형태로 표출되었지만 그 중심에는 이념적 정치구조, 특권엘리트 시스템, 언론 카르텔에 대한 근본적 개혁 요구가 있었던 점이다.

공화당 주류가 감히 건드리지 못했던 주제를 트럼프는 정면으로 건드렸다.

이는 대중의 분노를 대변했을 뿐만 아니라 기득권에 의해 봉인된 개혁의 잠금장치를 해제하는 과정이었다.

대한민국 체제수호세력도 같은 과제가 있다.

선거부정 의혹 해소, 우리법연구회 등 내란을 일으킨 사법 카르텔 해체, 특권엘리트권력의 독점 해소, 언론·여론조작 구조와 특정 이념세력의 국가기관 장악 해체 등은 그저 비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조직의 생존력은 내부 결속과 구조개혁 의지에서 나온다.

그 의지를 실천하지 않는 세력은 필연적으로 지지를 잃고 주변화된다.

세 번째로 트럼피즘은 “정치적 거리두기”와 “양비론적 보신주의”가 가장 위험한 실패 전략임을 증명했다.

공화당 주류는 트럼프와 거리를 두며 자신들은 깨끗한 중도라고 착각했지만 대중은 그들을 오히려 책임회피 기회주의세력으로 보았다.

한국의 체제수호 세력도 마찬가지 오류를 반복해왔다.

외부 공격도 모호하고 내부 부패와 무능, 비겁함에는 침묵하며 정체성 수호보다 이미지 관리에 더 몰두해왔다.

이러한 보신주의 정치가 조직의 정체성을 가장 먼저 붕괴시키고 스스로 기반을 무너뜨린다.

결론적으로 트럼피즘에서 대한민국 체제수호세력이 배워야 할 것은 내부 자기혁신, 정당 서사 회복, 대중 기반과의 재결합, 기득권적 보신주의의 단절, 구조적 개혁을 향한 실천 의지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