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국과 미국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과 중국에 대한 접근법에서 공감대를 형성했으나, 무역 분야에서는 양측의 입장 차이로 '현상 유지'에 머물렀다는 미국 전문가들의 평가가 나왔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확고한 관세 정책 앞에서 실질적인 합의 도출이 쉽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주최 세미나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 긍정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며 양측이 모두 중국에 대해 실용적으로 접근하려는 태도를 보였다고 진단했다.

브룩스 전 사령관은 "중국과의 건설적 대화를 위한 문이 열려있고, 한중·한미·미중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 구도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또한 "북한이 (대화의) 문을 열 것으로 믿는다. 10월이나 11월, 유엔(UN) 총회쯤일 것"이라며 북한이 그때까지 주변 환경을 평가하고 움직일 것으로 예상했다.

브룩스 전 사령관은 이재명 대통령이 방미에 앞서 일본을 방문한 것을 "단순한 관행의 변화를 넘어 매우 중요한 신호였다"고 평가하며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빅터 차 CSIS 한국 석좌는 이재명 대통령이 회담 당일 CSIS에서 한 연설에서 "한국이 과거처럼 안미경중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것을 두고 "중국 문제에 대해 사용한 언어가 미국에 아주 좋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차 석좌는 이 발언이 "한국은 중국과의 인접성 때문에 중국과 관계를 맺어야 하지만, 공급망이나 안보 문제에 있어선 미국의 편에 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에 대해 "김정은에게 대화할 의지, 문을 열고 대화할 의지가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라며, 다만 "언제 문을 열지는 북한이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정상회담이 국방·외교 이슈보다는 경제 이슈에 대한 입장 차이가 커 실질적 합의가 거의 없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마크 리퍼트 전 주한미국대사는 "과거에는 (한미 정상회담이) 안보로 시작해 정치·외교, 그러고 나서 무역 문제로 들어가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무역이 가장 앞자리에 와 있다"고 진단했다.

차 석좌는 "이번 정상회담은 공동 성명도, 공동 발표문도, 팩트 시트(백악관의 설명 자료)도 없었다"며 "무역과 투자 분야에서 실질적 어려움이 발생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특히 "3천500억 달러(약 485조6천500억 원) 투자 기금의 조건, 15% 상호 관세의 발효 시기" 등이 세부 협상에서 막혔으며, "이것이 우리가 공동 성명을 보지 못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필립 럭 CSIS 경제프로그램국장은 "한국 측에선 이재명 대통령이 관세 문제에서 너무 많이 양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 하는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원했던 투자·협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고 진단했다. 반면 "미국 측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관세 정책을 확고히 지키려 했지만, 일부 대규모 투자 약속의 시기와 구조에 대해선 유연성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럭 국장은 "양측이 서로를 시험하고 있었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공동 성명을 보지 못한 이유"라면서 "무역에서는 '현상 유지'였고, 앞으로 몇 달 동안 더 구체적인 합의로 이어질 여지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차 석좌는 "기업들은 이번에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고, 이제는 한국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는 압박이 강하게 있다"며 "(미국과) 일본의 투자 합의 조건이 협상되고 나서일 것"이라고 예상하며 한국이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더 큰 양보 압력에 직면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