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사진=연합뉴스

다른 사람을 향해 던진 그릇이 빗나가 맞지 않았더라도 폭행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최근 나와 법적 해석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판결을 두고 온라인에서는 '맞았는지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과 '욕설만으로도 폭행죄가 성립하는데 당연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형법 260조는 폭행죄를 "사람의 신체에 대해 폭행을 가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라고 규정하지만, 어떤 행위가 폭행에 해당하는지는 명확히 정의하지 않고 있어 법리 해석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형법상 폭행의 개념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의 논문 '형법상 폭행개념에 대한 이론'(1997)에서 발췌.사진=연합뉴스


◆ 형법상 '폭행'의 다양한 개념과 대법원 판례의 기준

법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형법상 폭행을 네 가지 의미로 구분한다.

가장 넓은 의미는 '사람·물건에 대한 일체의 유형력 행사', 넓은 의미는 '사람에 대한 직·간접의 유형력 행사', 좁은 의미는 '사람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 행사', 가장 좁은 의미는 '타인의 반항을 불가능케 하거나 현저히 곤란케 하는 유형력 행사'다.

폭행죄에서 말하는 폭행은 '좁은 의미의 폭행'인 '사람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 행사'에 해당한다. 반면 강도죄나 강간죄에서 말하는 폭행은 '가장 좁은 의미의 폭행'으로, 같은 '폭행'이라는 단어가 쓰이더라도 그 의미가 다르다.

대법원은 2016년 판결에서 폭행죄의 폭행을 "사람의 신체에 대해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유형력을 행사함"(2016.10.27, 2016도9302)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반드시 피해자의 신체에 접촉함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고, 그 불법성은 행위의 목적과 의도, 행위 당시의 정황, 행위의 태양과 종류, 피해자에게 주는 고통의 유무와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학계의 통설에 따르면 유형력은 역학적 작용(구타, 밀치는 행위, 침 뱉기, 손·옷을 잡아당기는 행위 등), 생리적·화학적 작용(심한 소음·음향, 최면술, 마취약 사용 등), 에너지 작용(빛, 열, 전기 등으로 고통을 주는 행위) 등을 포괄한다.

결국 폭행은 단순히 상대방을 때리는 행위를 넘어선 다양한 유형의 힘 행사를 의미한다.

시비 (PG).사진=연합뉴스


◆ 신체 접촉 없어도 폭행죄 인정되는 경우

실제 판례를 보면, 신체 접촉이 없어도 폭행죄가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채권자가 빚 독촉 중 자신의 멱살을 잡고 대드는 채무자의 손을 뿌리치고 그를 뒤로 밀어 아래로 뒹굴게 했는데, 그 결과로 채무자의 등에 업힌 아이가 숨진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폭행치사죄가 성립된다고 판단했다(1972.11.28, 72도2201).

채권자가 행사한 유형력이 직접 숨진 아이가 아닌 채무자의 신체에 닿은 것이지만 폭행으로 인정한 것이다.

피해자에게 가깝게 다가가 욕설하면서 때릴 듯이 손발이나 물건을 휘두르거나 던지는 행위, 자신의 차를 가로막는 피해자를 향해 차를 부딪칠 듯이 조금씩 전진시키는 행위도 모두 폭행으로 인정됐다(2016.10.27, 2016도9302).

즉, 사람을 향해 돌멩이를 던졌다면 설령 빗나갔더라도 유형력이 사람을 향했으므로 폭행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이 노래방 그릇 투척 사건에 대해 그릇이 빗나갔는데도 폭행죄를 인정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폭행.사진=연합뉴스


◆ 유형력이 신체 향하지 않으면 폭행 불인정

반대로 유형의 힘이 신체를 향하지 않을 경우에는 폭행에 해당하지 않는다.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잠겨있던 방문을 발로 차고 문을 열지 않으면 '모두 죽여 버린다'라고 폭언한 사건에 대해선 폭행죄가 인정되지 않았다(1984.2.14, 83도3186). 이는 방문을 발로 찬 행위를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로 보지 않은 것이다.

비닐봉지에 넣어 둔 인분(人糞)을 다른 사람의 집 앞마당에 던진 행위도 사람의 신체를 향한 공격이 아니어서 폭행에 해당하지 않았다(1977.2.8, 75도2673).

피해자와 물리적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폭행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가수 심수봉에 대한 전화폭언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거리상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전화기를 이용해 전화하면서 고성을 내거나 그 전화 대화를 녹음 후 듣게 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를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2003.1.10, 2000도5716).

단순폭행죄 (CG).사진=연합뉴스


◆ 소음과 욕설, 그리고 공무집행방해죄에서의 폭행

소음도 신체의 안전을 해칠 수 있는 음파라는 측면에서 폭행으로 인정될 수 있다.

대법원은 2009년 집회 시위 과정에서 발생한 소음을 공무집행방해죄에서의 음향으로 인한 폭행으로 인정한 바 있다(2009.10.29, 2007도3584).

당시 대법원은 "의사전달 수단으로서 합리적 범위를 넘어서 상대방에게 고통을 줄 의도로 음향을 이용했다면 이를 폭행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상황에서 폭행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음량의 크기나 음의 높이, 음향의 지속 시간, 종류, 음향 발생 행위자의 의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단순히 욕설만 한 것은 폭행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례(2001.3.9, 2001도277)도 있다.

피해자에게 불쾌감을 주는 데 그칠 뿐 피해자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여러 차례 폭언을 반복하는 것은 폭행으로 인정된 바 있다(1956.12.12, 4289형상297).

또한 공무집행방해죄의 폭행에서는 사람에 대한 직접적인 유형력뿐 아니라 간접적 유형력 행사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경찰관이 근무 중인 파출소 바닥에 인분(人糞)이 든 물통을 집어던지거나, 책상 위의 재떨이에 인분을 퍼 담아 바닥에 던지는 행위는 공무집행방해죄의 폭행으로 인정됐다(1981.3.24, 81도326).

폭행 PG.사진=연합뉴스


◆ 폭행죄 판단의 중요한 기준...'사회상규 위배 여부'

모든 물리적 접촉이 폭행죄로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유형력의 행사가 사회상규(공정하게 사고하는 일반인의 건전한 윤리 감정)에 위배되지 않으면 위법성이 없어진다.

생면부지의 3명이 사무실 유리를 발로 차 깨트리고 가는 것을 보고 피해 변상을 받고자 일행 중 1명의 옷을 잡아 사무실에 들어오게 한 뒤 멱살을 잡고 흔든 행위에 대해 대법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1975.5.27, 75도990).

대법원은 이러한 행위가 사회 통념상 용인될 상당성이 있다고 보며 "위법성이 결여되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시비를 걸려고 양팔을 잡는 것을 피하기 위해 몸을 틀어 뿌리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출입 문턱에 걸려 넘어졌더라도, 이 뿌리친 행위가 사회상규 내에 있는 것으로 인정돼 무죄판결을 받았다(1985.10.8, 85도1915).

결국 유형력의 행사가 신체를 향하는지, 일반적인 윤리 감정에 어긋나지 않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지 등 여러 판단 과정을 거친 뒤에 폭행죄 여부가 결정된다.

법률사무소 휴먼의 김종보 변호사는 "폭행이 넓게 적용돼 어떤 행위가 폭행인지 판단하는 것은 복잡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