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사진=연합뉴스
중국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자위대 개입 시사 발언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에 외교·경제적 압박을 가하면서 국제적 '악당' 이미지가 강화되고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국제관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해 중국의 이러한 전술이 지역 국가들의 시각을 왜곡하고 베이징의 '책임감 있는 강대국'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SCMP는 "중국이 안보 위협이나 주권 문제에 대응해 무역과 관광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며 이 같은 '위험한 전술'이 국제적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 압박은 지난 7일 다카이치 총리가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대만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하면 일본의 '존립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며 자위대 개입 가능성을 언급한 데 따른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즉각 일본 대사를 초치하며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을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으며, 국방부는 "위험을 무릅쓰면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이라는 강경 메시지를 발표했다.
구체적인 압박 조치로는 14일 외교부가 자국민에게 일본 여행·유학 자제를 권고한 '한일령(限日令, 일본 제한령)'이 꼽힌다.
이에 따라 중국 주요 항공사들은 15일부터 일본행 항공권 취소가 약 49만1천건에 달했으며, 이는 전체 예약의 32퍼센트(%)에 해당한다.
중국국제항공·중국남방항공·중국동방항공 등 3대 항공사는 약 50만건의 항공권에 대해 전액 환불 또는 여정 변경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나 해외 플랫폼에서 구매한 일본 여행 상품이나 현지 숙박·관광지 입장권은 환불이 어려워 중국인 관광객들이 직접 손실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 중단이 발표됐으며, 문화·관광 부문에서도 후폭풍이 이어졌다.
한중일 3국 문화장관회의가 잠정 연기됐고, 일본 영화의 중국 내 개봉이 연기되거나 중국 크루즈선의 일본 항구 접안이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랐다.
로이터통신은 21일 중국 당국이 일본 음악가들의 공연을 강제 취소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예를 들어 지난 20일 베이징의 한 공연장에서 일본 재즈 음악가 스즈키 요시호의 음향 체크 중 사복 경찰이 등장해 "일본인 콘서트는 모두 취소"라고 선언했다.
공연 기획자에 따르면 중국 전역 공연장들은 20~21일 당국의 지시에 따라 올해 남은 기간 일본인 공연 취소와 내년 신규 신청 금지 조치를 받았으며, 이미 관객들이 모인 상태에서 취소돼 환불 요구 시위가 발생했다.
싱가포르 난양이공대학교 딜런 로 교수는 SCMP에 "중국은 필리핀이나 한국과의 관계 악화 시 이미 유사한 수법을 써왔다"며 "각국이 중국 의존도를 재고하고 관광 다각화를 추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중국은 2014년 남중국해 분쟁 고조 시 필리핀에 '안보 상황 악화'를 이유로 여행 경보를 발령했으며, 2017년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배치에 반발해 한국 여행 상품 판매 금지와 비공식적 '한한령(限韓令, 한류 제한령)'을 시행한 바 있다.
이러한 행보는 중국의 '전랑외교(戰狼外交, 늑대전사 외교)' 전형으로 평가된다.
데이비드 아라세 존스홉킨스-난징중미연구센터 국제정치학 교수는 "중국의 접근은 전랑외교의 일환"이라며 "최근 사례는 중국이 지역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자 악당(bully)이라는 인식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뭉청 와세다대학교 국제학부 교수도 "이러한 경제 강압은 역효과를 낳을 수 있고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측 피해도 만만치 않다.
SCMP와 싱가포르 연합조보 등 중화권 매체들은 중일 항공 노선이 주로 중국 항공사에 의해 운영되다 보니 여행 취소 타격이 일본 항공사보다 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한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을 "일본 우익세력의 잘못된 역사관과 전략관을 드러낸 군국주의 초혼"이라고 비난하며 국내 여론을 단속했으나, 이는 오히려 일본 내 반중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지난 17일 중국에 국장을 급파해 관계 진정을 시도했으나, 다카이치 총리는 10일 "발언 철회 계획 없다"고 재확인하며 입장을 고수했다.
미국 국무부도 21일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포함한 일본 방위 공약은 확고하다"고 밝히며 다카이치 총리를 지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