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의 생전 모습.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과 아버지인 본지 이상훈 기자(왼쪽)는 부녀지간이 아닌 친구 같은 사이였다. (사진=더프리덤타임즈)
슬비야 오늘이 7월 1일이야.
밤새 안녕하셨는가? 힘들고 지치는 싸움이겠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주렴. 우리 슬비를 기다리는 가족, 친구들을 생각해야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슬비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겨내야 한다. 우리 슬비가 얼마나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지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지만 어둡고 긴 터널을 혼자서 지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진단다. 아빠는 요즘 들어 힘들다, 마음이 아프다, 슬프다, 무섭다, 가슴이 미어진다 등의 뜻을 알아가고 있어. 엄마 아빠도 슬비와 함께 힘든 싸움을 하고 있어. 우리 함께 힘내자.
우리 슬비가 밤새 어땠는지 어디가 좋아졌는지 언제 오실지 모를 주치의 선생님의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새벽 5시부터 집중치료실 앞에서 서성이고 늦은 저녁까지 슬비 옆을 지키고 있으니 우리 슬비는 걱정하지 말고 그 어둡고 긴 터널을 한 걸음 한 걸음씩 씩씩하게 걸어 나왔으면 좋겠어.
오늘은 4층 내과 집중치료실로 옮긴다고 하니 잠시라도 우리 똥강아지 얼굴을 볼 수 있겠구나. 눈물을 참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도 꿋꿋이 버텨볼게. 지금의 이 두렵고 걱정되고 안쓰러워 흘리는 눈물이 나중에 환희와 기쁨의 눈물이 되길 바래. 아빠가 방 구하러 간 사이에 쥐도 새도 모르게 4층으로 옮겼더구나. 하여간 집에서나 병원에서나 조용조용히 움직이는 건 똑같구만. 어쨌든 아빠랑 엄마가 한 달간 지낼 원룸을 구하긴 했어. 한 달짜리라 그런지 무지 비싸게 받는구만. 어제 복비 10만 원이라길래 그 돈 아끼려다 결국 16만원짜리 복비를 내고 말았지 뭐야. ㅋㅋㅋ 아빠가 항상 이렇지 뭐.
12:20 주치의에게 전화가 왔다.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니 무슨 일이 있어서 연락한 건 아니니 안심하라고 하신다. 전화벨 소리가 너무 무섭다. 서울대에 의뢰했던 뇌척수액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주요 결과는 모두 음성이라고 한다. 다행인 건가 불행인 건가? 정확한 원인이 나와야 치료를 할 텐데 아직도 원인을 모른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하지만 자가면역 뇌염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고 한다. 내 딸이 희귀병이라니...
다양한 치료를 병행하고 있고 의미 없어진 약물은 배제하고 스테로이드와 면역글로불린으로 조절하고 표적항암제인 리툭시맙은 계속 투약한다고 하신다. 혈압이 100 언저리에 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맥박도 괜찮고 체온도 잘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간 기능, 신장 기능도 괜찮단다. 좋은 상태는 아니지만 나빠지지도 않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잘한다 우리 슬비!
주말 동안 주치의는 없고 전공의와 전문의가 계속 곁에 있으니 병실 앞만 지키지 말고 좀 쉬라고 하신다. 그렇지 않아도 방을 구했다고 말씀드렸다. 월요일부터는 출근해야 한다. 집사람 혼자 슬비 곁에 두고 가려니 또 다른 걱정이 생긴다. 그래서 방을 구한 것이지만...그나마 방이라도 구했으니 씻고 자는 것은 해결이 되어 다행이다.
슬비와 집사람을 두고 출근을 하려니 혼자 겁이 나고 무서울까 걱정이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텐데...사무실 자리를 비우는 것은 한 달 정도는 가능하지만,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 청구서들은 보험으로 충분하지만, 장기간 지속될 경우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
4층 내과 집중치료실을 오늘 처음 개방했다고 한다. 울 똥강아지는 중환자실에 첫 테이프를 끊은 거였다. 그런 건 1등 할 필요가 없는데...우리는 슬비에게 1등을 원해본 적이 없다. 공부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학원이나 학습지도 시켜본 적이 없었다. 다만 초등학교 때 엄마가 직접 서점에서 문제집을 골라 범위를 내주고 문제 풀이를 시켰다. 문제 풀이가 끝나지 않으면 식사 시간도 거를 정도였지만 한 시간이면 끝낼 공부를 서너 시간 동안 질질 끌었기에 그런 것이다. 책상에 앉아있는 습관은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다그치거나 강요는 하지 않았다.
슬그머니 아빠를 찾아와 놀자고 하고 엄마에게 공부 시간 줄여 달라 말하라고 애교를 부리곤 했다. 아빠는 엄마의 생각을 존중하기에 우리 슬비도 엄마의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타일렀다. 그렇게 조그마한 슬비가 고등학생이 되어 아빠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큰딸이 되어버렸다. 지금에서야 되돌아보니 우리 슬비는 만으로 16세다. 아직 17년도 살지 못했다. 엄마와 아빠에게 그렇게나 많은 추억을 선물했는데 겨우 17년이라니...물론 앞으로 얼마든지 많은 시간을 함께하겠지만 우리 슬비와의 소중한 시간이 잠시지만 이렇게 멈추어 버렸다는 게 너무도 분통이 터진다.
하루빨리 원인을 찾아 제대로 된 치료를 해야 한다. 면회를 하지 못하고 더 나빠지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는 건지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 것 같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한 것이었다. 나빠질 게 없는 상황에서 더 나빠질 게 무에 있나? 슬비는 혼자서 외롭게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안심이라니...이래서 내 몸이 편해지면 안 된다. 슬비는 절벽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듯 무섭고 위험한 길을 혼자 헤매고 있는데 안심이라니!! 내 자신에게 실망을 하기에도 사치다. 항상 긴장하고 항상 맑은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 냉철한 판단이 필요할 때 흐트러져선 곤란하다.
4층으로 옮기고 나서는 슬비의 상태를 듣는 게 더 힘들어졌다. 오늘 첫 입주라 아무것도 갖추어 진 게 없다. 복도에 그 흔한 의자 하나 없어 바닥에 퍼질러 앉아있다. 그러고도 의사나 간호사들의 얼굴조차 보기 힘들다. 아까는 그동안 수고해 주신 3층 외과 집중치료실에 커피를 사다 드렸는데 한사코 거절하셨다. 결국 슬비가 새로 입주한 내과 집중치료실에 다 가져다드렸다. 받지 않으시는 걸 억지로 드렸는데, 면회를 말씀하신다. 그런 것을 원해서 드린 게 아니라 나도 면회를 거절했다. 지나가다 우리 슬비에게 눈길 한 번 더 주십사 해서 드린 거다.
우리 슬비는 어렸을 적 아빠를 무척 좋아했다. 때로는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아빠랑 노는 게 훨씬 재밌다고 할 정도였다. 집에서도 항상 붙어 있었다. 하도 붙어 있으니 집사람이 덥지도 않냐고 화를 낼 정도였다. 그런 나의 똥강아지가 어른이 되어감에 항상 아쉬워했다. 카톡으로 슬비가 어렸을 적 사진을 두어 장씩 보내주며 내 아가야 돌려달라고 농담도 자주 했다. 슬비는 또 보내달라고 보채기도 했다. 우리 슬비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 우리 슬비랑 마라탕을 먹으며 학교생활 이야기를 너무너무 듣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도 다르다. 오후에 포항 학부모 총무님께 당분간 슬비가 버스를 타지 못하고 휴학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씀을 드렸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직시하고 극복해야 한다. 호사다마라고 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함께 온다고 했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리리라.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 학교 친구들이 빠른 쾌유를 기원하는 응원 메세지를 많이 보냈다. 그 중 일부이다.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은 경북외국어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었다. (사진=더프리덤타임지)
7월 2일
05:00 한 달짜리 원룸을 구해 잠자리를 청했지만, 슬비 걱정에 뜬눈으로 지새우다시피 했다. 뭐 당연한거겠지만...어제는 슬비의 투병 수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페이스북은 1년마다 내가 올린 글을 다시 알려주기도 하고 무엇보다 다른 많은 분들께서 슬비를 위해 기도를 해주시길 바랐다. 슬비가 툴툴 털고 일어나면 수기를 모아 책으로 만들어 선물할 생각이다. 관심을 받기보다 슬비를 위한 글이다. 많은 분들께서 걱정을 해주시고 기도를 해주셨다. 감사드린다. 늦은 밤까지 안부 전화가 왔다. 전화가 올 때마다 집중치료실에서 온 전화일까 봐 너무너무 놀랜다. 힘든 밤이었다. 걱정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지만, 밤에는 전화를 지양해주십사 부탁을 드린다. 전화벨 소리가 너무 두렵고 무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전화를 놓칠까 겁이 나 손에 꼭 쥐고 잔다. 요즘 무서운 게 참 많아졌다.
오늘도 우리 슬비는 힘든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서 응원을 해야 한다. 어서 준비하고 나가야겠다. 어제처럼 잠시 자리를 비워 선생님 상담도 놓치고 슬비 얼굴 볼 기회도 놓칠 수는 없다. 지금은 면회도 겁이 난다. 상급종합병원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코로나나 다른 바이러스가 옷에 묻지는 않았을까? 슬비에게 옮기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옷에 묻은 건 어쩔 수 없지만 수시로 수도 없이 손을 씻고 있다. 진작에 잘하지...
오늘부터 주말이라 의사, 교수님들이 많이 안 계셔서 조금 걱정이긴 하다. 그래도 슬비 주치의와 전공의 선생님들께서 주말 내내 계신다고 하니 다행이다. 오늘은 슬비의 소식을 전해 들을 수가 있을까? 6시가 안 되어 병원에 도착했지만, 아직 슬비의 침상이 어느 쪽인지도 모른다. 3층에 있을 때는 보호자대기실 바로 옆이라 바깥쪽에서 벽에다 손을 대고 엄마 아빠의 마음을 전해보려 슬비에게 인사하고 격려를 해주었다. 의미 없어 보이는 행동이지만 무엇인들 어려울까?
어제는 슬비의 기말고사가 끝이 났다. 기말고사가 무슨 의미가 있냐지만 기말고사가 끝나면 방학이다. 얼마 전 슬비가 '아빠 고민이 있어'라고 했다. 고민을 물으니 방학 동안 방과 후 학습을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묻는다. 나는 대답했다. 지금도 잘하고 있는데 방학 동안 아빠랑 놀자고...그랬더니 부족한 부분을 공부해야 하는데 어쩌나 고민이라길래 방학 동안 집에서도 일찍 일어나서 공부할 자신이 있으면 집에 오고 자신이 없으면 기숙사에서 열흘 더 공부하라고 했다. 공부로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열흘 투자해서 끌어올릴 수 있으면 투자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1학년 방학 때는 내내 잠만 잤으니 이번에는 방과 후 학습 기간만 빼고 잠을 자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했다. 며칠 후 물었더니 방과 후 학습 신청을 했다고 했다.
대부분의 결정과 판단은 슬비가 직접 하도록 조언하고 결정하기 전 후일의 결과를 먼저 생각해보고 결정하라고 했고 슬비의 결정을 존중했다. 공부하겠다면 대견해하고 놀겠다면 아빠도 끼워달라고 했다. 스스로 신청한 방과 후 학습을 결국은 못 듣게 됐다. 슬비의 입원 기간이 길어질수록 슬비의 소식을 듣기 힘들어지는 것 같다. 더 나빠지지는 않고 있다는 뜻이겠지만 더 좋아지지도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굳건히 믿고 있다. 집중치료실 유리틈사이로 실내가 조금 보이기에 수시로 들여다보고 있지만, 우리 슬비가 어느 병상에 누워있는지 알 길은 없다. 의사, 간호사들이 뭔가 분주해 보이기라도 한다면 가슴이 철렁해지고 팔다리가 후들거린다. 너무도 몹쓸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나로서는 우리 슬비가 아니길 빌 수밖에 없다.
집중치료실 앞을 서성인 지 두 시간여...4층 내과 집중치료실은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다. 보호자대기실은커녕 의자 하나 없기에 더욱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것 같다. 슬비와 함께 투병 중이신 분의 배우자분께서도 안동에서 오셨다고 하신다. 루게릭병에 걸리셨는데 코로나 백신 접종 후 루게릭병에 걸리셨다고 한다. 우리도 슬비가 화이자를 2차 접종 후 부작용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화이자 접종 후 자가면역 뇌염 진단이 꽤 많은 사례가 있다. 물론 밝혀낼 수는 없겠지. 루게릭병에 걸려 중환자실에 계시다 일반병실로 옮긴 후 심정지가 왔다고 하셨다. 10분 정도 심정지가 와 뇌 손상이 심해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지셨다고 하셨다. 슬비가 경대병원으로 온 첫날 중환자실에 들어가자마자 누가 입원했냐고 물으시며 남편분께서 일주일 만에 깨어나셨다고 나에게 말을 걸어오셨다. 그날은 너무 괴롭고 힘들고 무서워 못 들은체 했었다. 도저히 축하해줄 의욕이 없었다. 평소 같으면 정말 축하드린다. 정말 다행이라고 말씀을 드렸을 텐데, 슬비가 이 글을 읽으면 또 잔소리를 늘어놓겠지.
그래서 이튿날 힘내시라고 베지밀 한 병을 드렸다. 사실 이것도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일주일 내내 자리를 지키는 우리를 보시고 안쓰러우셨는지 베지밀을 주셨기에 놔뒀다가 드린 거였다. 다음날 청소하시는 분들 나눠 드시라고 음료수를 한박스 사다 드렸다. 코로나로 면회가 금지되었지만, 집중치료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슬그머니 보시고 슬비 상태를 전해주시기도 했다. 어딜 가나 사회생활은 잘해야 하는 게 통용이 되는 듯하다. 우리 슬비가 이런 사회생활을 잘 배워야 할 텐데 무남독녀 금지옥엽이라 걱정스럽긴 하다.
루게릭병도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보험이 없으시다고 하셨다. 2주 중간 정산에 600만 원 정도가 나왔다고 걱정이 많으셨다. 나도 내가 보험을 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보험을 가입하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가장 먼저 보험 해약을 하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로 몇 년간 어려워 슬비에게 종신보험을 넣어주진 못했다. 그래도 실손, 수술, 입원 등 기본적인 보장은 되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돈 이야기는 슬비가 몰라도 되니 여기까지 하겠다. 너무 답답한 나머지 물티슈 등 용품을 핑계로 간호사 선생님을 호출했다. 혹시 슬비에게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보면서 슬비의 상태를 물어보니 새벽에 경련(경기)이 있었고 항경련제 증량하니 지금까지는 잘 자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슬비의 병상 위치를 물어보니 유리틈 사이로 보이는 내가 예상했던 자리였다. 다른 병상보다 의료장치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너무 슬픈 일이다.
하루빨리 경련이 잡혀야 CT, MRI 등을 찍을 수 있는데 걱정이다. 왜 경련이 자꾸 생기는 걸까? 하늘도 무심하다. 또다시 걱정이 쌓여가고 있다. 다음 주엔 원인을 찾아야 할 텐데...걱정으로 가슴이 답답해 숨쉬기가 힘든데 우리 똥강아지는 오죽할까? 오후가 되어도 주치의나 간호사 선생님을 만날 길이 없어 보이는구나, 그래도 우리 슬비가 아프다고 하니 곳곳에서 온정의 마음을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린단다. 더 좋은 병원을 알아봐 주시겠다거나, 아는 의사분들을 통해 담당 선생님께서 더 신경을 쓰게 해주겠다거나, 병원비를 보태주시거나 등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남을 돕는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을 텐데 너무 고마우신 분들이야. 이건 우리 슬비도 꼭 알아야 해. 나중에 아빠가 다 갚아야 할 것들이야.
그나저나 우리 똥강아지 이제 조금씩이라도 엄마 아빠에게 희망을 주어야 하지 않겠어? 오늘 내일은 아주 조금이라도 차도가 있길 바랄게. 힘내 똥똥!!
조금 전 병원 앱으로 검사 결과를 보는데 암모니아 수치가 엄청 높게 나왔다. 간이나 신장의 해독에 문제가 생긴 건가?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 빌어본다. 내가 뭘 알겠냐만 암모니아가 쌓이면 뇌 쪽에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아직 조금씩 경기를 하는 데 나쁜 영향을 주진 않을까 노심초사다. 너무 걱정이 돼 간호사 선생님을 호출했다. 혹시 주치의 선생님께서 오셔서 슬비를 봐주시는지 물었다. 주말이라 주치의 선생님은 오늘은 더 이상 나와 보지는 않으신다고 한다. 또 내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면담 신청을 해놨으니 연락이 올 것이다. 물론 검사 결과를 주치의 선생님께서 보시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강아지가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하면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음에 또 눈물이 난다. 남들과 다를 바 없이 멀리서 힘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음에 가슴이 미어진다. 살면서 이렇게 무기력했던 적이 있었을까? 살면서 이렇게 무서웠던 적이 있었을까? 살면서 이렇게 간절했던 적이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기억 속엔 없는 것 같다. 내 새끼는 저리 누워 온몸을 던져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데 나는 대기실 의자에 편히 앉아있는 이런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한 일을 직접 겪고 있음이 너무도 가슴 아프다. 무엇도 우리 슬비의 외로운 싸움을 대신할 수 없음에 분통이 터진다. 가슴이 미어진다. 눈물밖에 흘릴 수 없음에 스스로가 너무너무 한심스럽다.
우리 슬비가 너무 걱정되어 집중치료실 유리틈사이로 병상 쪽을 수도 없이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가까운거리임에도 얼굴조차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저 어린것이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하니 또 눈물이 흐른다. 내가 눈물을 흘리는 만큼 슬비가 좋아진다면 통곡이라도 하련만 참고 참았던 눈물을 흘릴 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오늘 밤은 너무도 두렵고 긴 밤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유리문 사이로 보이는 슬비의 병상은 평온해 보이지만 우리 슬비는 병마와 악전고투를 거듭하고 있으리라.
집중치료실 앞에서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마침 담당 교수님께서 오셨다. 들어가서 슬비 상태 확인 후 면회를 시켜주신다고 하셨다. 기다리는 몇 분간이 억겁의 시간만큼 더디게 지나간다. 경기는 많이 잡혀있기는 하지만 아직 약을 조금씩 올리고 있고 약을 많이 쓰다 보니 혈소판 수치가 많이 떨어져 수혈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검사 결과 수두바이러스에서 양성이긴 한데 약 반응과 진행 상황이나 경과가 너무 심하므로 다른 것을 의심하고 있다고 하셨고 혈압은 100 정도 겨우 유지 중이라 위험한 상황은 아니며, 어제는 폐에 물이 찼는데 거의 제거했다고 하신다. 스테로이드 투여 완료했고 면역치료 4주 지속 예정으로 최소 한 달은 중환자실에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기억이 잘 안 나긴 하는데 자가면역 쪽으로 양성 반응이 있다고 하셨다.
의료진에게서 들은 것을 대충 정리해보았지만 나아지고 있지는 않아 보였다. 잘 버티고 있어 보였으나 슬비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의 정신이 무너지는 듯했다. 저번처럼 오열하진 않았다. 하지만 억장이 무너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슬비 엄마가 슬비 듣고 있다고 말을 해주라고 해서 겨우 몇 마디하고 나왔다.
병원을 옮길 경우를 대비해 투병일지를 작성 중인데 최대한 자세히 적어야 해서 정신을 차려야 했다. 하지만 슬비를 보고 나자 도저히 침착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힘들지만, 우리 슬비만 할까? 힘들다는 말은 생각으로 족하다. 아직은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놓지 않았다. 나는 힘든 것이 아니라 두려운 것일 뿐이다.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이 어렸을 때 아빠(본지 이상훈 기자)에게 직접 만들어 준 상장이다. (사진=더프리덤타임즈)
22.07.03
슬비야 오늘은 우리 슬비가 쓰러진지 열흘째 되는 날이야. 엄마 아빠는 오늘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우리 슬비 옆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어. 어제는 너무 걱정되는 나머지 병원에서 자려다 원룸으로 왔어. 아빠는 또 거의 뜬눈으로 지새다시피 했지만 피곤하진 않아. 우리 강아지를 볼 생각에 오히려 힘이 나는 것 같아. 이따 봐~♡
어젯밤도 집중치료실에서 연락이 없었다. 주말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슬비의 상태를 체크하러 와주신 교수님께 너무너무 감사를 드린다. 오늘도 우리 슬비가 무탈하게 아주 조금이라도 회복하길 빌어본다. 어제 슬비를 만나고 방으로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 슬비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이 떠올랐다. 할 말이 이렇게 많은데 몇 마디 해주지 못한 아쉬움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힘들어하는 우리 슬비가 힘내는 데 전혀 도움을 못주다니...정신을 더 차려야겠다.
어제도 여기저기에서 걱정의 전화와, 문자를 보내주셨다. 페이스북에 수기를 올리는 것을 많이 고민했었다. 소통을 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내가 기억하기 위해서다. 전화기에 써놓고 실수로 날려버린 경험이 있었기에 보관에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었다. 저장을 위해 올린 글들이라 댓글을 거의 안 보고 있다. 내 글을 보는 이들이 많지 않기에 보관에 적당하다는 생각이다. 그 글을 보고 연락을 주신다. 우리 부부 둘보다는 더 많은 분들께서 함께 걱정해주시고 기도해 주시는 게 우리 슬비가 일어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슬비에게 도움이 된다면 무엇인들 못 할까? 오늘은 우리 슬비가 완쾌를 향해 일보 전진하는 날이 되길 빌어본다.
22.07.03 08:10
유리틈사이로 슬비를 보고 있는데 의사와 간호사들이 슬비앞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가슴이 철렁해서 안절부절 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20여 분이 지나고 전공의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슬비의 상태를 말씀해주셨다. 밤사이 괜찮았는데 새벽에 경련 몇 번 해서 재우는 약을 늘렸고, 재우는 약이 들어가면 장기들 움직임도 줄어서 소화가 잘 안 되어 약이 남아있다고 하셨다. 폐에도 물이 조금 차서 제거를 했고 피검사는 잘 나와서 안정화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두 달마다 주치의가 바뀌는데 이제 다른 분이 오셔서 말씀해주신다고 하신다. 안정화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하시는데 왜 경련은 멈추지 않고 폐에 물이 차는 등 없던 일들이 자꾸 생기는 것일까? 의학지식이 없으니 모든 게 의문이고 모든 워딩이 무섭게 들린다.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긍정적인 워딩이 나오는 건 좋은 일이겠지. 우리 똥강아지! 이제 조금씩이라도 엄마 아빠 곁으로 돌아와야지! 힘내자!
오늘이 지나면 출근을 해야 한다. 아무래도 일주일 정도는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집사람에게 모든 짐을 전해주고 가려니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집으로 간들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일 출근해서 보고를 드리고 다시 올 수 있도록 부탁을 드려봐야겠다. 너무 이기적인 건가? 물론 모두들 아무 신경 쓰지 말고 아이에게 전념하라고 말씀해주셨지만 내 마음이 편치 않다. 얼굴 뵙고 직접 말씀을 드려야 함이 도리겠지.
우리 슬비는 금요일 귀가 때마다 저녁은 마라탕으로 정해져 있다. 처음엔 포장해서 집에서 먹었지만, 요즘은 매장에서 아빠랑 이야기하면서 먹는 걸 좋아한다. 이 글을 읽으면 분명 아빠랑 이야기하면서 먹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매장에서 먹는 걸 좋아하는 거라고 하겠지. 나는 마라탕을 처음 접했을 때 이걸 왜 먹냐는 반응이었으나 이젠 나름 맛나게 먹는다. 우리 똥강아지가 좋다는데 뭘 못하겠냐는 생각으로 몇 번 가다 보니 이젠 나도 잘 먹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어느덧 둘이서 마라탕을 먹으며 슬비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고2 딸과 아빠의 대화 주제가 많지 않아서 집에 오면 엄마랑 계속 이야기를 한다. 가끔 숙제를 위해 시사나 정치적인 질문을 할 때를 제외하곤 슬비와 단둘이서 긴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은 마라탕을 먹는 시간이 유일하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시간이 아닐까? 이젠 마라탕을 먹지 않아도 이야깃거리가 넘쳐난다. 그 시간을 간절히 기다릴 게 이슬비~
울 똥강아지 아프지 않았더라면 기말고사 끝난 주말이라 친구들과 실컷 놀다 오늘 학교로 귀교하는 날이네...지금 시간이면 귀교 준비하느라 분주할 시간인데 이렇게 누워있으면 어쩌냐? 얼른 일어나서 학교 가서 친구들에게 병원 썰을 풀어줘야지~
아까 집중치료실 유리틈으로 보니 새로운 선생님께 인수인계를 하는 것 같던데 좋은 분이셨으면 좋겠다. 다들 좋으시지만, 우리 슬비의 병과 상성이 잘 맞는 그런 선생님이길 빌어본다. 종교가 없는 내가 이렇게 기도할 일이 많아지다니...부모님이 불교시라 아무래도 절이 편해서 슬비가 경대병원 온 둘째 날 팔공산 동화사에 갔었다. 초를 사서 슬비의 쾌유를 빌다가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눈물을 닦는데 집중치료실에서 전화가 왔었기에 지금은 병원에서 5분 거리 이상은 나가지 않고 있다. 병원에 있으면 집중치료실에서 전화가 거의 오지 않는다. 그러니 자리를 지켜야 한다.
집중치료실 유리틈이 두 군데다. 아래쪽 틈사이로 보니 슬비의 발가락이 보인다. 슬비 엄마는 항상 우리 슬비는 아빠 미니미라고 말하곤 했다. 그만큼 아빠를 쏙 빼닮았다. 특히 발은 그냥 똑같다. 그런 슬비의 발가락이 보인다. 집중치료실에서 우리 슬비를 처음 봤을 때는 오열했다. 의사 선생님의 더 이상 나빠지진 않는 것 같다는 말과 안정화되어가는 것 같다는 말 때문인가? 지금은 오열까진 하지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흐르던 눈물도 조금씩 말라가는 것 같다. 인간의 적응력 때문인가?
그래도 습관적으로 슬비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운 좋게 마침 주치의 선생님께서 슬비를 보고 계셨다. 어제랑 큰 차이는 없고 약을 많이 써서 혈구(혈소판 등) 수치 낮긴 한 데 우선 지켜보고 계시다고 했다. 오늘 CT를 찍으려다 뇌파가 약간 흔들림이 있어서 무리하지 않기로 했고 내일이나 모레 뇌척수액 검사, MRI 등 하려하신다고 했다. 경기가 있다 보니 암모니아 수치가 높긴 한데, 어제보다 떨어졌고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간, 신장 기능도 아직 괜찮다고 하셨다. 큰 걱정을 덜었다.
우리 똥강아지는 잘 해내고 있구나! 엄마 아빠는 항상 우리 슬비를 믿고 있단다. 엄마 아빠한테 친구 집 간다고 거짓말하고 혼자 서울로 놀러 갔을 때도 엄마 아빠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었지...물론 엄마의 촉이 발동해서 금방 걸렸었지만, 이번에도 엄마 아빠 몰래 혼자서 멀리 외유를 떠났구나. 아빠를 놔두고 가다니! 거긴 좋은 곳이 아니니까 어서 돌아오렴.
일요일인데도 전공의, 주치의 선생님을 만났기에 오늘은 조금이나마 안심이 된다.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긴 한가 보다. 슬비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지만 여기서 글과 마음으로밖에 응원하지 못함이 안타깝다.
(다음 편(7월4일~7월5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