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의 생전 모습.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은 경북외국어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었다. (사진=더프리덤타임지)


22.07.04(월)

우리 똥강아지 투병 11일째….
어찌나 시간이 빨리 가는지 열흘을 훌쩍 넘겼구나...지금 시간이 새벽 5시 30분...이제 슬비보러 갔다가 아빠는 포항으로 출근을 해야 해. 떨어지지 않는 발길이지만 어쩔 수 없어. 우리 슬비가 아무 어려움 없이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거든. 그래도 엄마가 항상 옆에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그 어둡고 긴 터널에서 잘 돌아와.

회사를 그만두고 우선 슬비가 좋아질 때까지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자리를 지켜야 하나 고민이다. 병원에서 슬비를 치료하는데 우리의 역할은 없다. 하지만 부모의 역할은 슬비의 옆자리를 지키는 게 가장 큰 일이고, 슬비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하고 일지를 작성해 혹시 모를 미래를 대비하고, 슬비의 치료에 필요한 각종 동의서, 물품 등을 사다 줘야 한다. 무엇보다 면회 때 슬비에게 육성으로 힘을 줘야 한다. 혼수상태라도 다 듣는다고 한다. 불쌍한 내 새끼….

오늘도 유리틈사이로 우리 슬비의 병상을 바라보니 간호사 선생님께서 뭔가를 하고 계신다. 약을 줄여도 모자라는데 뭔가 약이나 장치가 늘어나면 또 가슴이 미어진다. 불안함과 무서움이 막 몰려온다. 밤사이 어땠는지 너무 궁금하지만 조금 있으면 포항으로 출발을 해야 한다. 우리 슬비의 상태를 듣지 못 할 수도 있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일찍 오실 때는 6시 조금 넘어서 오실 때도 있기에 우린 6시 이전에 와서 기다린다. 슬비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열흘이 넘어 눈물이 조금 말랐나 싶더니 포항으로 향하려니 또 흐른다. 이 참담한 현실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포항에 도착하자마자 집에 가 짐을 싸고 출근을 했다. 그만두더라도 슬비 곁으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다행히 우선 아이부터 챙기라는 말을 듣고는 지체 없이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집사람이 교수님과 상담을 했나보다. 울면서 전화가 와서 가슴이 철렁했다.

어제는 수혈할 만큼 안 떨어졌었는데 오늘 좀 떨어져서 지켜보다 수혈해야 할 것 같고 경련은 많이 줄어서 CT, PET CT 찍을 수 있을 것 같고 뇌가 좀 부어 있는 상태라 뇌척수액 검사가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어젯밤부터 소변 색이 안 좋아서 항생제를 안 쓰다가 다시 투약했는데 감염 때문인지 약 때문인지 지켜봐야 하며 여러모로 많이 걱정되는 상황이고 오늘 뇌척수액 검사 결과가 중요하다고 하셨다.

한동안 휴게소에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병원에 도착하니 CT 촬영 준비 중이었다. 인공호흡기를 떼고 손으로 짜 넣으며 가야 한단다. 너무너무 불안하지만 어쩔 수는 없다. 검사를 해야 상태를 알 수 있고 원인을 찾을 수 있다. CT를 찍으러 가는 길에 우리 슬비를 잠깐 볼 수 있었다. 편안히 너무 예쁘게 잠들어있는 모습이었다. CT 촬영을 기다리는 시간이 억겁과도 같았다. 인공호흡기를 잠시 떼고 가는 중환자면 당연히 즉시 찍고 돌아와야 하는데도 먼저 온 환자를 찍고 다음번에 찍자고 한다. 그래서 먼저 오신 분께 양해를 구하는데 자기 자신도 오래 기다렸다고 한다. 간호사가 중환자라고 하니 흔쾌히 양보를 해주셨다. CT를 찍고 돌아오는 동안 간호사들이 뭔가 분주하다. 그러면서 빨리 가자고 한다. 의료장치에서는 뭔가 경고음이 들리고 간호사들이 서두르니 또 덜컥 겁이 난다. 집중치료실에 다시 자리를 잡으니 새로 바뀐 전공의가 나와 설명을 해주신다. 특별한 건 아니고 귀에 붙여놓은 장치가 잠시 이탈해서 그런거고 환자는 이상 없다고 하신다.

검사 결과가 잘 나왔으면 좋겠다. 기도하는 일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오늘 집중치료실 수간호사 선생님께서 휴가에서 복귀를 하셨다고 한다. 오셔서 몇 마디 하시니까 우리가 앉을 의자가 생겼다. 당연히 그러시겠지만 저런 추진력으로 우리 슬비와 다른 환자분들을 잘 케어해 주셨으면 좋겠다. 슬비 옆에 계시는 루게릭 환자분은 배우자 분께서 인공호흡기를 떼기로 하셨고 연명치료를 거부하셨다고 하신다. 그런데 병원 측에서 자녀분과 연락이 닿지 않아 연명치료 중단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인가 보다. 며칠 전에 깨어났다고 좋아하셨는데,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연들이 존재한다. 나 또한 이런저런 사연이 있지만 평범한 가장이었다. 다시 평범한 가장으로 돌아가겠지만, 그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우리 슬비도 평범한 여고생으로 돌아가 다시 완벽한 나의 자랑이 되어주길 바래본다.

늦게 점심을 먹고 오니 옆에 계시던 루게릭 환자 보호자분께서 슬비를 옆으로 눕혀놨다고 한다. 옆으로 눕혔다는 것은 뇌척수액 검사를 하는 것이다. 벌써 몇 번째인가? 검사를 해야 상태를 알 수 있는 건 알지만 우리 슬비가 너무 불쌍하다. 온몸에 셀 수도 없는 주삿바늘 자국이 있는데 또 바늘을 찌른다. 그나마 뇌척수액 검사를 한다는 것은 뇌가 심각할 정도로 붓지는 않았다는 거겠지? 그렇다면 다행인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하는 건 아니라 생각해야 한다. 뇌척수액 검사는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 시간 동안 집중치료실 밖에서 한숨만 쉬면서 기다리고 있다. 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겠지...지금의 현실이 너무너무 가슴 아프다.

눈물이 마른 게 아니었다. 누워있는 슬비를 보니 또 눈물이 줄줄 흐른다. 불쌍한 내 새끼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무서울까? 도와줄 수 있는 게 너무 없다.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다. 자가면역 뇌염이라면 시간이 걸리는 병이라고 한다. 시간이 걸려도 좋다. 지금처럼 누워만 있는 게 아니라 엄마 아빠랑 이야기도 하고 아프면 아프다, 불편하면 불편하다 말하면서 투정도 부렸으면 좋겠다. 중환자실을 벗어나 일반병실로 옮기기만 해도 좋겠다. 우리 슬비가 아프다는 게 조금씩 알려지나 보다. 여기저기서 걱정해주시는 전화도 많이 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전화벨 소리는 너무 겁난다.

뇌척수액 검사가 끝나고 결과가 나오자마자 교수님께서 오셔서 슬비의 상태를 말씀해주셨다. 대부분이 좋지 않은 소식이었고 단 한 가지 기본 검사상 염증 수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응급실 도착한 첫날보다 염증 수치가 줄었다. 더 늘었다면 절망적이었을 거라고 했다. 나이에 비해 경련이 너무 많기에 팔다리에 마비가 와 있을 수도 있어서 재활을 해야 할 수도 있고 기억, 인지 부분이 많이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은 후유장해를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라고 한다. 그냥 고비하나 넘은 거라고...하지만 우리 슬비는 오늘 가장 큰 고비를 넘은 것 같다.

폐렴이나 기타 감염 같은 게 걱정이다. 좋지 않다던 소변 색도 돌아왔다는데 맥박이 좀 느리다고 한다. 그래서 약을 또 쓴단다. 혈압은 100을 겨우 유지 중이고 피검사는 괜찮다고 하신다. 겉으로 보이는 경련은 한참 동안 없었고 뇌 속에서 조금씩만 보이는데 오늘 검사하는 동안엔 전혀 없었기에 거의 잡혀가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나이나 여러 가지를 봤을 때 경련을 이렇게 심하게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한다. 힘을 낼 수가 없다. 우리 슬비가 얼마나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우리 슬비의 기나긴 싸움은 이미 시작이 되었는데 우리는 도대체 정신을 차릴수가 없다. 하루 지나 하나씩 크나큰 충격을 받고 있다. 우리 슬비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야 한다.

우리 슬비에게 엄마, 아빠 그리고 멀리서 응원하시는 모든 분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하루하루 잘 견딜 수 있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제가 그동안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살아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로 인해 슬퍼하고 고통받았던 모든 분들께 사죄를 드리며 앞으로 낮은 자세로 겸손하고 또 겸손하게 살아갈 것을 맹세합니다. 우리 슬비가 일상으로 돌아올 수만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제발 우리 슬비에게 아무 일 없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제가 모르는 사이에 죄를 많이 짓고 살았나 봅니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에라도 저의 죄를 뉘우칩니다.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으니 앞으로 항상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반성하며 살겠습니다. 벌을 주시려면 제게 주시고 우리 슬비는 너무도 착한 아이입니다. 제게 잘못이 있다면 제가 벌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저의 기도가 어디까지 닿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매 순간 간절히 기도합니다.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 학교 친구들이 빠른 쾌유를 기원하는 응원 메세지를 많이 보냈다. 그 중 일부분이다. (사진=더프리덤타임지)


22.07.05(화) 06:00

오늘은 두 번째 면역치료를 시작한다. 1주일에 한 번 4주가 1사이클이다. 첫 번째 면역치료에서 효과를 봤으니 더 좋아지리라 생각한다.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하니 약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 슬비를 낫게 하기 위한 약들이 슬비의 몸을 상하게 하고 있으니 너무 답답하다. 두 번째 면역치료로 슬비가 호전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 슬비가 아직은 잘 해내고 있는데, 폐에 물이 차는 것, 복수가 차는 것, 폐렴이 생긴 것이 너무 걱정이 된다. 저 어리고 여린 우리 슬비가 감당하기에 너무 벅찬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우리 슬비는 잘 버텨내리라 믿는다. 제발 그래야 한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툴툴 털고 일어나기엔 너무 먼 곳까지 온 것 같다. 하지만 아직은 일상으로의 복귀가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고 있다. 엄마와 아빠는 우리 슬비 자체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기에 우리 곁으로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밤새 우리 슬비가 무탈했는지를 보러 가기 위해 오늘도 새벽부터 분주하다. 제발 아무 일 없었기를 기원한다. 우리 슬비가 없는 세상은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살아갈 자신은 없다. 그렇기에 아빠를 좋아했던 우리 슬비는 일어날 것이다.

오늘은 집중치료실 유리틈사이로 우리 똥강아지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 하긴 전에도 발가락 한두 개만 보였을 뿐이었다. 너무도 궁금하지만, 의료진을 방해할 수는 없다. 새벽기도를 드리는 부모의 심정으로 매일 새벽 병실 앞에 도착해 발을 동동 구르며 슬비의 무탈을 빈다. 밤새 아무 일 없었기를, 밤새 병마와 잘 싸웠기를, 밤새 조금이라도 호전되었기를 빌고 또 빈다. 집중치료실 앞을 서성이다 슬비와 가장 가까운 벽면에 손을 대고 기도를 했었는데 오늘은 한 인턴 선생님이 기분 나쁜 말투로 “아저씨 그쪽으로 가면 안 돼요.”라고 한다. 인턴 숙소가 있는 쪽 복도일 뿐인데, 아직 젊고 의사인 그가 부모의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 이제 슬비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슬비를 위해 기도할 수가 없게 됐다. 벽 하나 사이를 두고 벽에 손을 대고 슬비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안 된다니, 더더욱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진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도해야겠다.

내 삶의 모든 시곗바늘이 멈췄다. 시곗바늘이 언제 다시 돌아갈지 알 수는 없다. 우리 슬비의 아픔도 나의 시곗바늘처럼 멈췄으면 좋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슬비 삶의 시곗바늘만 멈춰있다. 언젠가는 다시 힘차게 돌아갈 것이다.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의 행복의 시계가 다시금 활기차게 돌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오늘따라 주치의 선생님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 너무너무 불안해 안절부절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어제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고 불행이라면 약을 많이 써서 혈소판 수치가 수혈을 해야 될 상황까지 낮아졌다는 것이다. 우리 강아지는 어제도 병마와 힘든 싸움을 잘 이겨내고 있었다. 우리 슬비는 너무너무 잘 이겨내고 있는데 아빠는 걱정만 늘어놓고 있으니 이렇게 한심할 수가 없구나.

우리 똥강아지가 어렸을 적 아빠랑 눈만 마주치면 물어보던 말이 있었다.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 라고 물으면 슬비는 아빠 똥강아지~하고 대답하곤 했다. 지금도 고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포옹을 한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그러고 싶냐며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내곤 했다. 우리 슬비가 어릴 때는 온몸이 부서져라 있는 힘을 다해 아빠를 꼭 안아주곤 했었다. 아빠 생일날에도 다른 선물은 필요 없고 한번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사랑스럽고 애교스러운 슬비와의 시간들 하나하나 나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슬비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사진들로도 많이 남아있다. 우리 똥강아지가 깨어나면 울지 않고 웃으며 안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점심 무렵 오매불망 기다리던 교수님께서 오셨다. 혈소판 수치가 너무 떨어져 수혈은 해야 한다. 2차 면역치료 하고 있고 초반 항경련제가 독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어서 줄이고 있다고 하셨다. 처음 쓴 약을 줄이면 뒤에 쓴 약을 올려야 한다고 한다. 경련이 빨리 잡혀야 한다. 혈압 100 정도 꾸준히 유지되고 있으니 이번 주도 지켜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는 없다. 우리 슬비가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도록 계속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오전 6시쯤 병원으로 와서 20~21시쯤 숙소로 향한다. 대략 15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고 있고 15시간 중 대부분을 4층 집중치료실 앞에서 혹시 모를 호출이나 의료진의 워딩을 기다린다. 하루 두세 번의 짧은 워딩을 듣기 위해 집중치료실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것이다.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다만 담당 교수님이나 주치의 선생님께서 언제 오실지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오시면 어쩌나, 슬비 상태를 전해 듣지 못하면 어쩌나 싶어 식사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점심, 저녁 무렵 선생님을 만나 뵙고 슬비의 상태를 전해 들으면 비로소 식사 시간인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글을 저장하기 위해 페이스북을 선택했다. 그런데 사진을 함께 올리면 자동으로 인스타그램에 공유가 되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을 잘 안 해서 소홀했다. 슬비가 아프다고 소문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난감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더 많은 분들께서 슬비를 위해 기도해 주시길 바랄 뿐이다.

나는 아이들을 싫어했다. 귀찮고 시끄럽고 성가셔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기를 가지지 않으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사람이 우리도 아기를 가질까? 라고 해서 우리 슬비가 태어난 것이다. 우리 슬비가 태어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정말이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모유에서 분유로 넘어가던 날, 분유 먹다 토하던 날, 처음으로 이유식을 먹던 날 등 아직도 생생하다. 기저귀 갈아주는 것도, 벽 잡고 일어서던 날, 혼자서 두세 걸음 걷던 날, 아빠랑 단둘이 목욕탕 가던 날 등 모든 기억들이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런 우리의 슬비가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현실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우리 슬비의 상태가 너무너무 궁금한데 의사나 간호사 선생님들의 왕래가 없어 알 길이 없다. 수혈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하고는 있는지, 각종 검사 결과는 어떤지, 지금 슬비의 상태는 어떤지가 너무도 궁금하다. 담당 선생님들도 지나가면서 귀띔이라도 해주시지 이젠 그냥 못 본 척 지나가기 일쑤다. 환자 보호자이자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주시길 바래본다.

17:50 집중치료실에서 전화가 왔다. 조금 전 서명을 했는데 전화가 왔다는 것은 좋지 않다는 뜻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담당 교수님이 보자고 하신단다. 급하게 올라오니 교수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오늘 오후 3시쯤부터 뇌압이 올라가서 지금 동공이 조금 열려있다고 급하게 CT를 찍는다고 하신다. 혹시나 출혈이 있는지 아니면 뇌가 부으면서 숨골을 누르고 있는지 등 확인이 필요하단다. 만약 출혈이 있으면 위험하다고 했다. 팔다리에 힘이 풀리고 머릿속이 텅 비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CT를 찍으러 가는 길에 슬비를 보자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집사람은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있었고 나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때 퉁퉁 부은 슬비의 손을 보자 너무 불쌍해서 눈물을 쏟았다.

CT를 찍자마자 나는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었고 주치의가 찍으면서 봤는데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올라가서 자세히 보고 이야기 해주신다고 했다. 얼마간 기다리니 교수님께서 부르신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괜찮다고 하신다. CT를 찍고 돌아오는 길에 동공도 돌아왔다고 하셨고 지금은 나빠지기 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셨다. 당분간 매일 CT를 찍으면서 지켜보겠다고 하셨다. 정말 너무너무 무서웠다. 우리 슬비의 얼굴을 보는데 눈물도 나지 않을 만큼 두렵고 무서웠다. 우리 슬비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시간이 조금 지나고 진정된 마음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자면 우리 슬비는 병마와의 큰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이제 우리 슬비는 조금씩 조금씩 이겨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글을 적는 것도 지금이 아니면 기억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힘을 짜내어 적는다.

(다음 편(7월6일~7월11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