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의 생전 모습.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과 아버지인 본지 이상훈 기자(왼쪽)는 부녀지간이 아닌 친구 같은 사이였다. (사진=더프리덤타임즈)
22.07.06(수)
밤새 연락이 없었다. 우리 슬비는 아직 병마와 잘 싸우고 있겠지. 아무 일 없었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밤새 우리 곁으로 한 발짝이라도 다가왔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글을 쓰는 이유는 멈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멈추면 슬비도 싸움을 멈출까 봐 그게 겁이 난다. 우리 슬비가 깨어나 일상으로 복귀 할 때까지 이 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집착이다. 슬비야 아빠는 여기서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겁먹지 말고 잘 찾아와~
슬비야 오늘도 우리 슬비가 잘 버텨주기를 간절히 기도할게. 힘들고 무섭고 괴롭겠지만 하루하루 버텨내면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엄마 아빠가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는지 알지? 꼭 돌아와야 해. 엄마랑 아빠랑 할 이야기도 많고 할 것도 많잖아. 9월에 제주도 가기로 했었는데 조금 늦으면 어때? 우리 슬비 맛있는 거 사주려고 아빠가 비상금도 모아놨는데...조금 늦게 가도 되니까 얼른 일어나자.
오늘따라 글 몇 자 적는데 왜 이리 힘든 걸까? 벌써부터 눈물이 나면 안 되는데...우리 함께 힘내자 슬비야.
벌써 6시다. 어제 슬비가 큰 고비를 넘기고 나서 많이 놀랬던지 우리 부부가 30분 정도 늦게 일어났다. 얼른 준비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평소보다 15분 정도 늦었다. 유리틈사이로 보이는 슬비의 병상은 무언가 평온해 보였다.
우리 슬비의 본명은 이선주. 우리는 한글 이름을 원했었다. 작명소에서 이슬비와 이선주 두 개의 이름을 받았다. 이슬비가 마음에 무척 들었는데 슬비가 크면 이선주라는 이름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더욱이 이름 풀이에 이슬비는 이성 관계가 복잡하다는 풀이가 있었기에 아빠인 나의 반대가 이유였다. 그래서 호적에는 이선주로 올리고 우리는 이슬비로 불렀다. 유치원에 가기 전까지는 이선주로 부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아직 이슬비로 부르고 슬비도 그 이름을 더 좋아한다. 슬비가 퇴원하면 이름을 바꾸는 것을 고려해봐야겠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언제 오실지...우리 슬비의 소식을 듣기 전까진 우리 부부는 거의 말이 없다. 서로를 격려해 주거나 슬비의 안녕을 바라는 말조차 없다. 서로의 마음을 워낙 잘 아는지라 말이 필요 없다. 내가 우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는 집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우는 나를 보고 있고, 집사람이 우리 슬비에게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를 잘 아는 나도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새로 바뀐 전공의 선생님은 말을 길게 안 하신다. 아주 간단한 워딩만 하시기에 정보가 거의 없다.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필요한 말만 하시고, 담당 교수님께서는 이것저것 설명을 많이 해 주시는데 좋은 말이 별로 없기에 듣는 보호자로서 걱정이 많다. 다른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다. 우리 슬비가 조금이지만 호전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07:20 전공의 선생님께서 오셨다. 슬비의 상태를 확인하시곤 그냥 가버리신다. 집사람이 뛰어가 붙잡고 물어보니 어제처럼 동공이 열리는 증상은 없는데 밤새 경련이 많아졌다고 한다. 혈압도 떨어져 혈압을 올리는 약을 쓰고 있다고 하셨다. 이따 담당 교수님께서 오시면 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시겠지. 오늘은 좋은 소식 하나만이라도 들을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한다.
밤새 우리 슬비가 힘겹게 버텼다는 것을 생각하니 또 가슴이 저려온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게 없고 도움이 전혀 되지 못함이 원망스럽다. 우리 슬비에게 견디라는 말밖에 할 수 없음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불쌍한 우리 슬비, 이 어려움을 잘 견디면 세상에 나와서 우리 슬비가 못 견딜 일은 없을 것 같다.
08:45
주치의 선생님께서 오셨다. 지금 당장 위급한 상황은 아니지만, 약재 부작용으로 피수치가 안 좋은 것도 있었고 폐에 물 찬 거, 폐렴, 복수 등 다양한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하신다. 아침에 보니 수혈 영향으로 혈소판 수치는 올라왔고 빈혈 수치가 좋아졌다고 하는데 가장 반가운 소식이란다. 혈소판 수치를 낮추는 약을 줄인 영향인 것 같다고 하셨다. 다만 약을 조절해서 그런지 짧은 경련이 자주 보여 혈소판 등을 낮추는 약재 말고 다른 약물을 올렸다고 하셨다. 약을 워낙 많이 쓰고 있어서 약을 더 올리기엔 부담스럽고 동공 부분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이는데 혈압약이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래도 석연찮은 부분이 있어서 경과를 봐야 한다고 하셨다. 심장 수치가 좀 높아졌는데 이유는 다양한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심근경색인데 심근경색은 아닌 것 같긴 해서 심전도, 초음파 검사도 해봐야 할 것 같고 교수님과 상의 후 치료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하셨다.
당장 위급한 상황은 아니라지만 하루 지나 하나씩 무엇인가가 늘어나고 있으니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우리 슬비가 무슨 죄가 있어 저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걸까? 이제 고작 16년 조금 더 살았다. 죄를 지을 만한 시간도 없었다. 죄가 있다면 나에게 있는데 왜 우리 슬비가 고통을 받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해맑고 착한 우리 슬비가 왜 병상에 누워 힘겨운 사투를 벌여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특별한 아이도 아닌 그냥 지극히 평범한 여고생 중 하나일 뿐인데 세상이 너무 원망스럽다. 제발 우리 슬비가 엄마 아빠 품으로 돌아오길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간절히 애원한다.
오후 들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교수님께서 다녀가셨다고 주치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오전에 말씀하신 내용과 차이는 없다고 하셨다.
주치의- 교수님이 보고 가셨는데 오전에 이야기한 내용과 차이는 없음. 혈소판, 빈혈은 좋아졌고 경기가 있어서 다른 약을 올려서 경기는 낮췄음. 심장 수치는 초음파 요청해놨고 심장 문제보다는 스트레스일 가능성 높음. 계속 지켜봐야 함.
이렇게 짧은 워딩을 듣기 위해 새벽부터 나와서 자리를 지키는데 15분 정도 자리를 비운 사이 다녀가셨다고 하니 힘이 빠진다. 더 나빠질 것 없는 상태인데 아직도 나빠질 게 있다는 게 참 속상하다.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슬비가 때로는 힘에 부치기도 할 텐데 아빠로서 도와줄 수 없다는 게 너무 속상하고 안타깝다. 이 큰 짐을 가녀린 우리 슬비 혼자 짊어지고 저렇게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부모가 아닌가….
활짝 웃고 있는 우리 슬비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
심전도, 초음파 검사로 심장 쪽에 문제가 있는지를 확인 중이다. 제발 더 이상의 합병증은 없어야 한다. 우리 슬비가 깨어나는 시간이 더 이상 늦어져서는 안 된다. 너무 힘들어하는 슬비가 조금이나마 호전되길 바라고 또 바라는데 합병증은 절대 없어야 한다. 우리에게 기적은 없는 것일까?
슬비는 하루하루 힘들지만 잘 버텨내 주고 있는데 우리가 지치면 안 된다. 우린 조금 불편할 뿐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으니 엄마 아빠 걱정하지 말고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힘을 내줘 슬비야. 이렇게 말만 하고 도움이 되지 못해 너무너무 미안해. 우리 슬비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았는데 엄마 아빠가 많이 해주지 못한 게 지금 와서 보니 너무 속상하고 안타깝구나. 얼른 일어나서 하고 싶은 것도 해보고 가보고 싶은 곳 다 가봐야지 않겠어? 아빠가 기다릴게~♡
오늘은 이상하게도 담당 교수님과 계속 엇갈린다. 오전에도 그랬고 오후에도 엇갈렸다. 병원이 너무 추워서 긴팔 후드티를 입고 있는데도 입술이 파래질 만큼 추웠다. 1, 2, 3, 5동은 괜찮은데 유독 새로 지은 6동은 춥다. 한여름에 몸을 녹이려 일부러 밖에 나간 사이에 교수님께서 오셨다. 위급한 상황이 아니기에 연락 없이 가셨다고 한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특별히 달라진 상황은 없고 심장 초음파에서도 큰 문제 없었다고 하셨다. 심장수축도 괜찮았기에 걱정되는 심근경색은 아닌 거 같은데 심장 수치가 올라가고 있어서 순환기내과에서 봐주기로 하셨다고 한다. 가장 걱정되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하셨다. 오후에도 각종 검사했는데 혈소판, 빈혈은 오전보다도 좋아졌다고 하셨다. 약재를 조절하면서 괜찮아지는 것 같은데 간 수치는 조금 오르고 콩팥은 아직 괜찮다고 하셨다. 경기, 뇌염, 심장수치 세 가지가 가장 문제인데 뇌염은 계속 지켜봐야 하는 거고, 경기가 걱정되는 상황인데 새로운 약재를 추가하려고 고민하는데 워낙 약을 많이 쓰고 있어서 걱정이 된다고 하셨다. 초응급 상황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우리 슬비가 힘을 내고 있다. 어제 잠깐의 면회 때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들었나 보다. 어제 집사람이 그동안 코로나 같은 것 때문에 면회에 적극적이진 않았는데 이제부턴 적극적으로 하겠단다. 슬비에게 육성으로라도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힘을 북돋아 줘야 한다고 했는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22.07.07(목)
02:20
전공의- 새벽 2시경부터 혈압이 많이 떨어져 내과 당직의와 처치 중. 약간 안정된 상태이긴 한데 위중함.
03:00
전지예 교수-새벽부터 혈압이 50까지 떨어지고 맥박이 너무 빠름. 아무래도 뇌염이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심장, 호흡 쪽으로 영향을 주는 것 같음.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어 전기충격기로 바로잡을 예정. 잡히지 않으면 심폐 소생해야 함. 오늘 밤이 고비.
03:15
전지예 교수–전기충격을 두 번 했으나 반응이 없어 심폐소생 15분간 실시 예정.
03:45
심폐소생술 20분 후 잠시 돌아옴.
03:50
슬비 면회
04:16
슬비가 우리 곁을 떠났다.
따뜻한 말 한마디 못 해줬는데 우리 슬비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천사 같은 우리 슬비 좋은 곳에서 잘 지내렴. 사랑해.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의 빈소.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은 경북외국어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었다.
2005년 11월16일 오후 1시에 태어나 2022년 7월7일 새벽 4시16분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이 땅에서 고작 6천77일을 살았다. (사진=더프리덤타임지)
<편집자 주>
이상훈 기자의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의 투병 일지를 정리하고 편집할 때는 눈물이 앞을 가리고 자판을 치는 손이 떨려서 몇 번이고 쉬었다 작업을 하고 또 쉬었다 작업을 했는지 모른다.
어쩜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의 이야기는 절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 일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분명 내포되어 있었을 것이다.
6천77일 이 땅에서 자신의 꿈을 키우면서 착하디착하게 살다 간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에게 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또한 무남독녀를 잃고 지금 이 시간에도 긴 어둠 터널에 서 있는 것처럼 빛이 보이지 않을 이상훈 기자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이상훈 기자의 코로나 일기> 연재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하루라도 더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 외에 많은 학생들이 코로나19 백신으로 인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는 이 땅의 내일과 미래들이 사라진 것이다.
하루빨리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질 사람들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 줄 때, 이 땅에 사는 우리들의 내일과 미래들에게 대한민국은 안전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곳이라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의 투병 일지는 여기서 멈췄지만 다음 일기부터는 이상훈 기자가 딸을 그리워하면서, 코로나19 백신 희생자들과 함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투쟁하는 일기들을 전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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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은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 위치한 통천사 극락원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다. (사진=더프리덤타임즈 제공)
22.07.11
나의 하늘은 단 보름 만에 무너져 내렸고 나의 가슴은 날카롭디날카로운 비수에 난자당했다. 일분일초가 지나고 시간 시간이 지나가고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나의 상처와 아픔은 더욱 커져간다.
세상 무엇과도 비교조차 될 수 없는 나의 모든 것이었던 나의 자랑 나의 슬비가 나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는 사실이 조금씩 조금씩 현실로 다가온다. 2005년 11월 16일 오후 1시부터 시작된 나의 시계는 17년도 채우지 못하고 2022년 7월 7일 새벽 4시 16분에 영원히 멈추어 버렸다. 우리 슬비가 떠난 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버렸고 우리 슬비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내 인생 모든 것을 담은 꿈이 되어버렸다.
이 세상에 나란 존재가 지워져 버렸고 나의 존재를 증명해주던 나의 분신의 존재가 지워져 버렸다. 슬픔이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이고 견디지 못할 고통이다.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우지 못할 빈자리를 보며 우리 슬비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리 슬비가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면 숨쉬기 힘들 만큼 아픔이 밀려온다. 우리 슬비가 새벽에 떠나서 그런 걸까? 새벽에 잠이 깨면 아무런 준비 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우리 슬비가 써 내려온 블로그를 찾았다. 마지막 블로그를 포스팅하지 못한 채 우리 슬비는 떠났다. 독한 마음을 먹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대부분 아이돌 이야기였다. 그러던 중 한 단락이 눈에 띄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아침에 정신력으로 등교했고 너무 아파 헛구역질까지 했다고 한다. 왜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왜 참았을까? 이제 와 후회한들 무엇 할까? 이제 와 아쉬워한들 무엇 할까?
불쌍한 내 새끼, 귀가하는 주 금요일에 통화하면서 토요일에 병원을 가자고 했다. 당연히 알았다고 했고 토요일 아침에 병원 가자고 깨웠다. 이제 안 아프다고 안 가도 된다고 해서 그냥 재웠다. 알고 보니 그날에도 새벽까지 머리가 아팠다고 한다.
내가 부모로서 자격이 있는 걸까? 제 새끼 아픈 것 하나 돌봐주지 못하고 신경 쓰지 못한 내가 아빠라고 불릴 자격이 있었던 걸까? 내가 아빠로서 자격이 없었기에 우리 슬비를 저렇게 데려간 걸까?
내게 남은 거라곤 우리 슬비의 흔적들과 사진밖에 없다. 이제 슬비의 육신은 불태워져 뼛가루만 남았고 나의 슬비는 영원히 볼 수 없음인데 눈물을 흘릴 자격이 내게는 있는 걸까? 나 스스로가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나는 과연 우리 슬비를 뒤로한 채 일상으로 돌아갈 수가 있을까? 우리 슬비가 없는 일상이 과연 나에게 돌아갈 의미가 있을까? 그 의미 없는 일상을 살아갈 의미도 자신도 이유도 없다. 그렇다고 삶을 포기할 수도 없다. 그건 우리 집사람에게 너무도 가혹하니까 그래서 그냥 살아가야 한다. 이 아무런 의미 없는 세상을 아무런 의미 없이 아무런 희망 없이 무미건조하게 이 세상을 유지하는 부품 하나로 살아가면서 우리 슬비에게 더 주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뉘우치며 그렇게 마음에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사랑하는 슬비야 아빠는 이렇게 남은 일생을 후회와 뉘우침으로 살아가면서 우리 슬비의 명복을 빌게. 거기에 있는 근심과 걱정, 아픔과 고통, 슬픔과 애환은 모두 아빠에게 보내렴. 그리고 우리 슬비는 그곳에서 오로지 사랑과 행복, 기쁨과 환희같이 좋은 것들만 누리며 살길 바랄게. 언젠가 아빠에게 물었지. 다시 태어나도 엄마랑 결혼 할 거냐고. 아빠는 당연하다고 말했었지.
그래야 우리 슬비를 또 만날 수 있으니까
아빠는 다음 생에도 엄마를 만날게. 그때 다시 만나자. 그때는 오래도록 아빠 딸로 있어 줘.
슬비야 아빠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슬비야 사랑해.
본지 이상훈 기자는 무남독녀였던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을 한시라도 곁에 두고 싶어 포토북을 만들었다. (사진=더프리덤타임즈)
(다음 편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