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의 생전 모습.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과 아버지(본지 이상훈 기자)는 부녀지간이 아닌 친구 같은 사이였다. (사진=더프리덤타임즈)

22/08/17

의미 없는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아무런 의욕도 의지도 없이 허망한 하루들이다. 멍하니 출근해서 멍하니 퇴근 시간만 바라보고 앉아 있다가 집으로 와 또다시 슬픔에 잠긴다.

우리 슬비의 마지막 날들이 하루씩 하루씩 선명하게 떠오른다. 눈으로 보지는 못했으나 슬비가 쓰러졌을 당시의 모습들도 눈으로 본 것 마냥 선명하다.

매일 새벽 눈을 뜨면 병상에 누워있는 슬비의 모습과 집중치료실 밖에서 안타까워하는 우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잠시간의 면회에서 슬비를 더 많이 만져주지 못했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음이 너무너무 아쉽고 후회된다.

마지막 가는 길에 한 번 안아보지도 못했다. 그저 불쌍하고 안쓰러움에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다정하게 인사도 못 했던 것 같다.

슬비를 위해 기도를 하려고 절에 가서 부처님께 기도를 할 때도 머릿속에 아무런 단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무언가 슬비를 위해 기도를 해야 하는데 눈물을 삼키며 절만 하고 나오게 된다.

매일 글을 쓸 때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순간순간 슬비를 생각하며 슬비에게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 글을 쓴다. 그래서 더 슬프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어느덧 일상이 되었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도 슬비의 모습이 떠오르면 참을 겨를도 없이 눈물이 흐른다. 누가 보면 민폐라도 될까 싶어 눈치가 보인다. 슬픔도 때와 장소가 있나 싶어 더 서글퍼진다. 산에 들어가서 마음껏 슬퍼해야 할까?

습관적으로 자다가 전화기를 확인한다. 기숙사에 있는 슬비가 혹시 전화를 했는데 받지 못했나 싶어서 확인을 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기다리던 시간은 슬비의 귀가 주 금요일이었다. 두 번째로 기다리던 시간은 슬비가 수신자부담으로 전화하는 10:30 어림의 시간이다. 1학년 때는 거의 매일 전화가 왔다. 2학년이 되자 일주일에 한 두 번으로 줄었다.

학교 동아리다 운영위원회(운위)다 해서 바쁘다고 했다. 귀가할 때면 항상 동아리와 운위 이야기였다. 특히 운위를 하면서 너무 바빠 잠잘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면서도 열심히 했다. 내 딸은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들을 때마다 놀라웠다.

그런 운영위원회가 어제 끝이 났다고 한다. 우리 슬비가 있었으면 분명 전화가 왔을 것이다. 전화로 얼마나 홀가분 한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했겠지….

저녁에 전화는 아빠인 나에게 한다. 엄마는 스케줄이 불특정해 항상 나와 통화를 했다. 내가 잠들어 전화를 못 받은 게 세 번 정도였다. 3층에서 1층까지 내려와 줄 서서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못 받으면 너무너무 섭섭하고 미안했다. 그래서 바로 카톡을 남기면 다음날 '괜찮아'라고 답장이 왔다.

슬비와 관계된 일에 귀찮거나 번거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무엇을 하더라도 기쁨이었고 보람이었다. 나는 슬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했고 고개만 돌리면 존재하는 '아빠'였기 때문이었다.

슬비도 나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내 삶의 기둥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자랑스러웠고 언제 어디서나 사랑스러웠다. 이제 나의 버팀목은 사라졌고 삶의 기둥도 사라졌다.

도무지 실감 할 수가 없다. 내가 슬비가 없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슬비와의 기억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22/08/18

캐나다 주류 언론에서 코로나 백신 반대 시위 보도

대한민국 언론은 양심을 저버렸다.

백신부작용 피해자들이 수없이 접촉했음에도

곤란하다며 보도를 꺼렸다.

아니 취재조차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에 양심 있는 언론과 기자는

'파이낸스투데이 **영' 기자 한 명뿐인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진실은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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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언제부터 불신 공화국이 되었을까?

국민들이

정치인을 신뢰치 못하고

언론인을 신뢰치 못하고

방송인을 신뢰치 못하고

공무원을 신뢰치 못하고

기업인을 신뢰치 못하고

법조계를 신뢰치 못하고

의료계를 신뢰치 못하고

나는 작금의 상황을 신뢰치 못한다.

특히 의료계를 신뢰치 못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백신을 현미경으로 확대한 결과에 대한

의료계의 반응이 다양하다.

다양 할 수가 없고 다양해서도 안 되는 결과다.

그것이 신뢰할 수 없는 이유다.

정치는 이에 관심이 없고

언론은 이를 다루지 않고

방송도 이를 다루지 않고

공무원은 무조건 백신을 신뢰하고

법조계는 진실을 밝히려 하지 않고

기업은 살인 백신을 전 세계에 팔고 있다.

대한민국은 불신 공화국이다.

22/08/19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

자가면역 뇌염은 그냥 희귀병이 아닌 희소병 중에서도 희귀하다는 극희귀병 입니다. 밝혀진지 6~7년밖에 되지 않았고 수십 수백가지 원인 중 7가지 정도만 밝혀진 상태로 자가면역 뇌염 뇌척수액 검사는 우리나라에서 서울대에서만 검사가 가능합니다. 음성이 나왔다고 해서 자가면역 뇌염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훨씬 더 많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극희귀 질병을 유발하는 백신이라고 제약사가 스스로 밝혔습니다. 극히 일부만 밝혔는데 그게 1,200가지가 넘습니다. 그중에 자가면역 뇌염, 뇌전증(간질 발작)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슬비는 병원에서 발병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1. 멀쩡하던 아이가 극희귀병에 걸릴 확률

2. 제약사가 스스로 밝힌 부작용(자가면역 뇌염) 있는 백신을 맞고 극희귀병에 걸릴 확률

상식적으로 어떤 것이 확률이 높을까요?

그리고,

1. 42일 안에 발병해야 백신 인과성을 인정(관련 근거 없음)

2. 제약사가 스스로 밝힌 수분~수년 또는 그 이상 부작용 발병 가능

상식적으로 백신 인과성 인정 기간이 어떤 것을 인정해야 할까요?

제가 만 47년을 대한민국에 살면서 지방대학이지만 석사까지 마쳤습니다. 제가 그동안 보고 듣고 배운 '상식'이라는 것을 대입하면 당연히 둘 다 2번이라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요?

첫 번째 질문은 1번일 수도 있습니다. 백신이 없었어도 극희귀 질병에 걸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2번입니다.

그것이 논리적이니까요.

그것이 상식적이니까요.

하지만 대한민국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인가 봅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질병관리청은 제약사가 밝힌 1,200여 가지의 부작용 중 심낭염, 심근염 단 두 가지만 인과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약사가 밝힌 수년 또는 그 이상의 발병 기간이라 밝혔지만 대한민국 정부와 질병관리청은 근거는 없지만 접종 후 발병까지의 기간을 30일로 설정했었다가 선심쓰 듯 확대한 것이 42일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백신을 만든 기업이 밝힌 부작용 1,200여 가지를 인과성으로 인정하고 그 기간은 모두 인정해야 합니다. 백신을 맞기 시작한 지 수년이내 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시간이 지나 백신 제약사가 추가로 부작용을 밝히면 그것 또한 인과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기저질환과 인과관계는 살펴야 하지만 이 또한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기저질환을 진행시켰거나 더 악화시켰다면 당연히 인과관계를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제가 배운 '상식'입니다.

22/08/20

윤석열 정부

백신 국가 책임제...

책임지겠다더니

아예 관심도 없구나….

국민 외면엔 좌우가 없다!!

22/08/21

주말 처형네에서 소주 한잔하다가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 습관적으로 슬비를 찾았다.

잊고 있었던 것인가?

다행히 아무도 듣지 못했다. 그냥 넘기려는 순간 밀려오는 죄책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물을 훔치는 나를 보곤 집사람도 참았던 눈물을 쏟는다. 힘들게 참고 있었나 보다. 통곡을 한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울었다.

전생에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가혹한 벌을 받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렇지...이승에 존재하는 슬픔 중 가장 큰 슬픔을 왜 우리가 겪어야 하는 걸까?

사람들은 힘내라, 잊어라, 잘 보내줘라 등 위로를 건넨다. 겪어보지 않은 슬픔에 대해 이해한다는 식의 위로를 전할 때면 모든 게 다 싫어진다.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겪은 부모들이 모인 곳의 글들을 보면 다 우리와 같은 마음이다.

우리가 걱정되어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넨 것이지만 때로는 더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우리의 마음은 더 이상 상처가 날 곳 없이 난도질당했고 그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그리움이란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것이다. 시간 조금 지났다고 예전과 같아질 수는 없다. 오히려 점점 더 커지는 그리움에 상처는 더 커져가는 것이다.

모든 것을 멈추고 절을 찾아 슬비를 위한 기도하러 다닐까 고민 중이다. 우선 49재에 108배를 해야겠다. 108배를 하면서 간절한 염원을 담아 슬비를 위해 기도한 후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22/08/22

백신부작용 피해자가 조사 결과를 납득하지 못해 피해조사반 회의 결과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

'정보 부존재'

백신부작용 피해조사반이 회의한 회의록 자체가 없다고 한다.

회의를 하지 않은 것인가?

회의 내용을 숨기려 하는 것인가?

내용을 읽어보면 회의 결과를 안내문으로 통보는 하지만 회의록은 없단다.

통보된 안내문에 적힌 회의 결과를 증빙할 자료가 없다.

결국 맘대로 기각하겠다는 뜻이다.

이것이 '백신 국가 책임제'의 실체다.

22/08/23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을 가슴에 새긴 사람들의 마음은 비슷하다. 대부분 같은 마음인 것 같다.

아이가 하나든 둘이든 그 이상이던 그 마음이 같더라. 슬픈 마음을 공유하는 카페에 슬비를 위해 만든 포토북을 이야기했다.

대부분 사진첩, 포토북을 만들었다. 그래놓고는 조금 시간이 지나면 서랍 깊은 곳에 넣어둔다. 사진과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없단다. 사실 나도 지금은 펼쳐볼 자신이 없다.

대부분 납골당에 데려다 놨다. 그리곤 집으로 데려올 걸 하고 후회한다. 나는 처음부터 슬비를 데려오려 했지만, 슬비 친구들을 위해 우선은 조금 먼 곳인 대구에 데려다 놨다.

매일매일 후회하고 있다. 차라리 그냥 포항에 데려올 걸...그냥 집으로 데려올 걸...그나마 다행인 건 슬비 옆에 외할아버지가 계신다는 것이다.

또 하나 공통적인 것 중 하나는 부모조차 우리 마음을 이해 못 한다는 것이다. 이건 겪어보지 않고서는 정말 조금도 알 수 없다. 알 필요가 없는 일이다.

이해를 바라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미 겪은 우리 외엔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생살을 도려낸들 이보다 더할까? 그건 아물기라도 하지...

다들 그냥저냥 시간을 보내며 다시 만날 날만 기다리고 있다. 남은 가족이 있으니 그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 나도 시골로 들어가 농사지으며 조용히 살면서 슬비와 재회를 기다리려 한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채 그렇게 살려고 한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슬비 방에 들어가 자고 있는 슬비를 쓰다듬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허전함과 공허함에 눈물을 흘린다.

이젠 돌이킬 수 없기에 그렇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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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정권으로 인해 국민들이 받은 고통과 유가족의 슬픔은 그냥 희생양이 되어 버리겠구나….

쓰레기도 이런 쓰레기들이 없다. 식약처는 백신 이물질 관련 조사한 적 없고 유튜브에서 보니까 문제없다더라~~

우리는 지금 이런 백신을 맞고 있습니다.

선진국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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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나에게서 슬비를 데려갈 수 있을까?

우리 슬비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데...

우리 슬비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데...

왜 그래야만 하는 걸까?

왜 그랬어야 하는 걸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두번째 줄 왼쪽 4번째 빨간색 원) 학생이 학교 친구들과 재미있는 포즈로 찍은 단체 사진.

故 이선주(한글이름 슬비) 학생은 경북외국어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었다. (사진=더프리덤타임지)

22/08/24

지금 괜찮다고 괜찮은 게 아닙니다.

저희도 그랬습니다.

병원 한 번 안 가봤습니다.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2차까지 전 국민 88%가 접종했습니다.

전 국민 88%가 위험 범위 안에 있는 겁니다.

지금 여러분과 여러분 가족도 위험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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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란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생기는 것이다. 그리움은 시간을 먹고 자란다. 그렇기에 점점 더 슬퍼지는 것이다.

잊을 수 없고 치유될 수 없는 상처로 인한 그리움은 더욱 큰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 어떤 위로와 치료제로도 극복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이다.

자식이란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고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없다는 것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리라.

아픔을 이해한다는 말은 그들의 상상일 뿐이다. 부모 된 입장으로 어렴풋이 짐작 정도는 할 수 있으되 이해하진 못한다.

오늘은 슬비의 49재였다. 종교는 없지만, 불교에 가깝고 친숙하기에 49재라는 의식을 했다. 따로 제를 올리지는 않았고 우리만의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슬비를 위해 108배를 하기로 했고 오늘 부처님께 슬비의 극락왕생을 부탁드리며 108배를 마쳤다. 슬비의 친구들도 함께 108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별것 아니지만 그 아이들에겐 도전이고 나름의 성취감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슬비가 지켜보고 있었다면 위로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108배를 하는 동안 슬비의 극락왕생을 빌었고 슬비의 윤회를 빌었다. 슬비가 환생하게 된다면 우리보다 훨씬 훌륭한 부모를 만나길 빌었고 무한히 행복하길 빌었다.

108배를 하는 동안은 힘든 줄을 몰랐다. 중간중간 슬비가 옆에서 기분이 좋아 뛰어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겠지.

슬비의 친구들도 끝까지 108배를 마쳤다. 참 고마운 일이다. 아이들도 108배를 하는 동안은 힘든 줄 몰랐다고 한다. 그래도 다리가 많이 아팠으리라.

오늘은 슬비의 두 친구들이 딸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덜 슬펐고 덜 울었다. 아무래도 오늘만큼은 슬비의 빈자리를 채워준 것 같다. 우리 슬비가 지켜보면서 아빠를 위해 그렇게 해줬나 보다. 하지만 내 옆은 언제나 슬비의 자리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슬비의 친구들에게 갓바위 이야기를 했다. 내년이 고3이니 수능기도를 하러 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슬비와 함께 오르고 싶었는데 나의 개인적인 욕심이었는데 아이들에게 성취감을 주고 싶었다. 아이들도 꼭 가고 싶다고 했고 조만간 함께 갓바위를 오르기로 했다. 언제일진 모르지만….

하루하루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나아지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게 슬비가 없기에 아무래도 상관없다.

지금처럼 슬비를 생각하며 울고 싶을 때마다 글을 쓰고 슬비의 사진을 보면서 또 울면 된다. 매일 출근해서 차 안에서 천수경을 들으며 한참을 울다가 들어간다. 퇴근하면서도 운다. 내가 슬비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깊이 애도하고 깊이 슬퍼하고 깊이 생각하는 이런 것뿐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22/08/26

정기석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장

"백신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는 안전하다."

국민을 상대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인간이 감염병위기대응 자문위원장임

22/08/27

간직하려고 그렇게 애타게 찾던 슬비 명찰과 학생증을 찾았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는데...

슬그머니 나타나네...

22/08/31

비가오니 슬비가 슬퍼서 우는것 같았다...그래서 대신 슬퍼해 주고 대신 울어줬다. 슬비 친구들도 매일같이 슬비를 기억해준다.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가장 슬픈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오늘도 그 슬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모진 세상 모진 풍파를 잘 헤쳐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었건만...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에게서 사랑, 희망, 가치, 신념, 의지를 한꺼번에 가져가 버렸다. 남은 것은 몸뚱어리뿐이다.

어제는 슬픈날...

오늘은 슬픈날...

내일은 슬픈날...

내 신체의 삶은 계속되겠지만...

내 마음의 삶은 계속되지 않는다...

내 희망의 삶은 멈추었고

내 의지의 삶은 끝나버렸고

내 가치의 삶은 흩어져 버렸다.

글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글로써 마음을 다스리려 다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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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백신의 실체를 애써 감추고 백신부작용에 대해 입 다무는 질병관리청장은 바이오주에 투자하고 있고...

나라 꼬락서니 잘 돌아간다.

(다음 편에 계속)